이따 '거기'서 봐
휴대전화가 일상화되기 전 만남의 장소
창동 영화관·마산시외버스터미널·동네 오락실…
사라진 곳도 있지만 마음 한편에 추억으로 남아

"오후 2시에 만나."

내 경험에 한정하면, 약속 시간만 정하면 장소는 항상 같았다. 그러니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도, '거기'라는 지시 대명사도 사족이었다.

나의 추억 속 약속장소는 창원 정우상가다. 정우상가는 지금도 지역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한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버스 정류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공중전화도 있으니 급히 약속을 바꾸기도 편하다. 물론, 휴대전화가 일상으로 스며든 지금은 예전과 다르지만 말이다.

▲ 창원 마산합포구 옛 문화문고. /경남도민일보DB

지난해 1월 1일 개별공시지가 기준으로 경남에서 가장 비싼 땅이 정우상가 터다. ㎡당 610만 2000원. 비록 인근 상남동 유흥가에 비하면 유동 인구는 적을지라도, 정우상가의 위용은 여전한 셈이다.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곳이 있다면 사라진 곳도 있기 마련이다. 창원 마산합포구 부림동 연흥극장은 지난 2007년 철거됐다. 당시 모체였던 1·2관 건물 터는 사설 주차장으로 변했다.

옛 마산을 대표하던 대형 극장이 복합영화관에 밀려 무너지는 모습은 시민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길 건너 옛 피카디리극장 건물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해 헐리지 않았다. 매표소 임시 건물이 남아있어 어렴풋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극장 매매 228평'이라 적힌 현수막에서 옛 극장의 규모가 읽힌다.

▲ 옛 피카디리극장. /최환석 기자

창동 골목에 마주한 두 공간도 약속장소로 유명했다. 서점인 학문당과 옛 시민극장 건물인데, 학문당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반면에 옛 시민극장 건물은 모습을 계속 바꿨다.

시민극장은 관객 감소로 1995년 7월 27일 영화 <브레이브 하트> 상영을 끝으로 문을 닫았고, '무료입장'이라는 대형 옷 가게가 들어섰지만 그마저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개도 안내할 정도'라던 공간은 개선을 거쳐 옛 모습을 찾기 어렵다.

가만 보면, 예전에는 약속장소로 영화관을 선호한 모습이다. 대표적인 문화 향유 공간이 영화관이었다는 뜻이겠다. 연흥극장, 시민극장과 더불어 진해지역에는 화천동 옛 해양극장이 추억의 약속장소로 꼽힌다.

빵집은 약속장소와 더불어 소개팅, 미팅의 공간으로 활약했다. 1982년 문을 연 창원 동성동 코아양과는 1990년대 말 수선을 거쳐 지금의 흰색 4층짜리 건물로 변신했다. 1980년대 마산 대표 빵집 가운데 태극당은 문을 닫았고, 고려당과 코아양과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원 합성동의 유명한 약속장소를 꼽는다면 이별과 만남의 공간인 마산시외버스터미널 앞이다. 1979년 7월 26일 준공한 터미널은 현재 승차장과 하차장을 구분한다.

▲ 코아양과. /최환석 기자

터미널 앞에서 만난 이들은 지하상가로 발길을 돌린다. 지하상가는 2003년 마산합성지하상가에서 대현프리몰로 이름을 바꿨다. 전체면적 1만 6749㎡라 '지하상가에서 만나자'고 말하면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 '지하상가 분수대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다.

지난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추억의 약속장소를 알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40여 명이 자신의 추억을 공유했다.

창원은 △정우상가(의창구 용호동) △마산시외버스터미널(마산회원구 합성동) △대현프리몰 분수대(마산회원구 합성동) △마산자유무역지역 후문(마산회원구 양덕동) △창동사거리(마산합포구 창동) △코아양과(마산합포구 동성동) △학문당(마산합포구 창동) △옛 시민극장·무료입장(마산합포구 창동) △문화문고(마산합포구 남성동) △옛 연흥극장(마산합포구 부림동) △경남대 정문(마산합포구 월영동) △옛 해양극장(진해구 화천동) 등이 꼽혔다.

▲ 옛 시민극장. /경남도민일보DB

이 밖에 △김해 내동 거북공원 △김해 부곡동 코아상가 △진주 대안동 차 없는 거리 △진주 가좌동 경상대 정문 △하동시외공용정류장 △사천 동금동 목전빌딩 등이다. 동네 오락실, 문구점도 약속장소로 손꼽혔다.

다양한 공간을 언급했지만 목록에 빠진 약속장소가 더 많을 듯싶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이 기억하는 추억의 약속장소는 어디냐고.

1997년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연흥극장 앞 인파. 과거 대표적인 약속 장소 중 하나였다. /경남도민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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