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 교육자치 (하) 주체로 갈 길 멀다
교육부 똑같은 잣대로 평가결과 따라 교육청 예산 지원…학교 행정처리에만 내몰려
학생·학부모 교육주체로서 스스로 결정·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 강화·지원 필요

'누가', '어디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지한다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현재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 이들을 교육 3주체라고 하지만 교육법에서조차 대부분 주어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부장관, 학교의 장이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초·중등교육법에서 교사가 주어인 경우는 딱 한 번, 학생과 학부모가 주어로 언급되는 조항은 아예 없다"며 교육법 주어부터 바꾸자고 주장했다. 법이든 학교든 주어 바꾸기가 급선무다.

◇평가로 통제받는 교육청 =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함께 1회 '교육자치정책협의회'를 열고 교육자치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많은 권한을 시·도교육청으로 넘기면서 '공룡 교육청' 우려 지적도 나오지만 자치와 분권에 관한 기본 방향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교육청은 각종 논의에 앞서 교육부의 교육청 평가부터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6년 시작된 시·도교육청 평가는 △학교교육 내실화(22점) △학교폭력 및 학생위험 제로 환경조성(21점) △교육비 부담경감(13점) △교육현장 지원 역량 강화(11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시·도 특색사업 점수는 100점 만점에 10점에 불과하다.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을 똑같은 잣대로 들이대 정부의 경쟁 교육 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교육청에 우수한 점수를 줬다.

경남도교육청은 평가를 대비해 교육활동 홍보 계획을 마련했고, 세부적으로 신문사 보도실적은 2점, 방송사 보도 실적은 3점, 비판성 보도는 '-2점'이라는 척도를 제시(지금은 폐지)한 바 있다. 이렇게 평가에 집착하는 이유는 평가 결과에 따른 교육부 차등 지원 금액이 2014년 기준 최저 1.9배에서 최고 8.1배 큰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예산을 쥐고 시·도교육청을 통제하고 관리해 온 탓에 교육자치 논의는 사실 교육청으로서는 고민 밖의 일이 돼버렸다.

지난달 창원 교육을 생각하는 시민 50여 명은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강당에서 '제1회 2018 창원 교육 토론회'를 열었다. /경남도민일보 DB

◇교육권 없는 학교 = 교육부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학교는 어떨까?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지금까지 교육행정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중심이고, 학교는 그에 종속된 행정처리 기관으로 작동됐다. 교육부에서 만든 정책과 특색사업, 교육청 정책과 특색사업, 교육지원청에서 만든 정책과 특색사업이 다 합쳐 학교에 내려오면 학교는 공모에 응하고 계획서를 작성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인성교육, 독서교육, 상담 운영계획, 안전, 학교폭력,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계획 등 기본계획을 40개 안팎 작성한다. 중요하지만 너무 많은 의무 교육이 있고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지침과 공문으로 통제된 학교는 교장 재량권마저 약화시킨다. 교직원 회의는 학교장 훈화로 마무리되고 학교 안에는 교사회가 없다. 교육과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 위원장은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교장과 교사의 역할만 제시된다면 학교에 특색사업이나 공모사업 같은 것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교육부, 교육청 사업을 축소하면 자연스럽게 학교 예산이 늘고 학교가 자율적으로 사업을 기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말 경남도교육청 정문 앞에서 경남청소년행동준비위원회 토요 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제주 현장실습 사고 사망 학생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형식적인 학교운영위원회 = 1996년 도입된 학교운영위원회는 5·31교육개혁(1995년)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방안'에서 제안됐다. 학교장의 독단적인 운영을 견제하고 투명성을 높이고자 함이다. 하지만, 현재 다수 학교운영위원회 운영은 학교장 거수기로 전락해 있다.

학급별 대표가 학년 대표가 되고, 학년 대표로 구성된 학부모회가 학교운영위원회의 대표성을 지녀야 하지만 이러한 절차들은 생략돼 있다. 한 학부모는 "신학기 아이 학교를 찾아 담임과 인사하고 반별로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의 엄마가 학급 대표 학부모가 됐다. 교사는 이름만 올려두는 것이니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당부했고, 학년을 마칠 때까지 연락 한 번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고, 학교 측 역시 학교 운영 주체가 아니라 지원과 동원의 대상 정도로 볼 뿐이다. 학교운영위 결과를 공식적으로 알려야 할 학부모회도 찾기 어렵다.

이현 참교육연구소장은 "학부모는 학생의 보호자로서, 학교운영위-학년별 교사-학부모협의회 등 학교와 협의 구조를 더욱 촘촘하게 구성해 자신의 요구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강화해야 한다. 학부모회 법제화와 지원 강화 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남청소년행동준비위 회원들이 지난달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방학에서 살아남기 행사를 한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자치권 없는 학생 = 학교마다 학생회가 있지만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학생회 선거는 사회 축소판이라고 하지만 권한이 없다 보니 깨끗한 학교, 자판기 설치 등 단순 복지 공약에 그칠 뿐이다. 정작 학교 주인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학교생활에서 중요한 수업, 생활교육 내용, 동아리 활동, 체험활동 기간·일정과 관련한 학생들의 결집된 의견을 말할 기회는 없다. 학생회 회의 주제조차도 학교 인성부장이 제시하는 때도 많다.

경남청소년행동은 "학생들이 거의 유일하게 학교에 대한 의견이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학생회조차도 힘이 없는 상황이다. 학생회에 실질적인 결정권도 없을뿐더러 학교에서 예산조차 편성해주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생회가 힘이 없는 것은 임원들의 역량부족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 학생, 학부모를 시작으로 교육자치, 학교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높여가고는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이 역시 확산하지 못하고 일부 의견에 그칠 수 있다. 경남청소년행동은 10일 집회를 연다. 그들의 주장은 실질적인 학생 자치권 보장, 학생회 결정권·예산 편성권 보장, 학생의 정치적 활동 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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