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라의 곤드레만드레] (3) 수제맥주를 만드는 사람들
창원 '브라이트 브루잉 컴퍼니' 양조장 겸한 펍 운영
6종 만들어 판매…라거 일색인 국내 시장과 차별화
"수제맥주 매력은 다양성" 지역민·관광객 즐길거리로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했던가요. 한 분야를 집중해 파고들면 자기 나름으로 이치를 깨치게 됩니다. 여기에 재미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요.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개인 취미겠지만, 이런 일이 개인적인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요.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색다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격물치지도 열렬히 환영합니다. 어느 분야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분은 언제든 문정민 기자(minss@idomin.com)에게 연락주십시오.

국산 맥주의 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말 오줌 같은 맛? 건방지게 비싼 가격?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독과점이다. 하이트와 카스가 문제는 아니지만 하이트와 카스가 국산 맥주 시장의 전부인 것은 문제다. 독과점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제품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누가 국산 맥주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지역을 보게 하라'고.

제인창(37) 대표는 지난해 8월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고인돌 사거리 부근에 맥주 브루어리(Brewery·양조장) 겸 펍(Pub·술을 비롯한 음료와 음식을 파는 대중적 술집)을 열었다. 상호는 창원시의 빛날 창(昌)에서 영감을 얻어 '브라이트(bright) 브루잉 컴퍼니(이하 브라이트)'라고 지었다. 양조는 타 지역 브루어리에서 양조사로 일하고 있던 이상민(32) 씨가 맡았다.

제 대표와 이 양조사는 기간은 다르지만 모두 회사원이었다. '맥주 덕후'라는 정체성을 슈퍼맨 가슴에 새겨진 'S 마크'처럼 간직한. 둘은 요즘 말로 '덕업일치(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는 것을 말함)'를 이룬 셈인데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브라이트 브루잉 컴퍼니에서 생산·판매하는 상남IPA(왼쪽)와 고인돌 앰버. /우보라 기자

"브루어리와 판매를 함께 하다 보니 국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 세무서에서 인·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관련 법규가 일원화돼 있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처음이라 정보도 부족했고요." (제 대표)

올해 2월 기준 브라이트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맥주는 총 6종이다. 밀맥주인 둔켈바이젠, 인디아페일에일(IPA)인 상남IPA, 앰버에일(Amber ale)인 고인돌 앰버, 세종(Saison)인 마드모아젤, 사워(Sour)맥주인 보물섬 그리고 한정 생산·판매하는 블론드에일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더핸드앤몰트, 카브루, 플래티넘, 아크, 트레비어, 와일드웨이브, 맥파이, 아키투 등 전국 소규모 브루어리의 맥주를 만날 수 있다. 라거 일색인 국내 맥주 시장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상남IPA와 고인돌 앰버를 주문했다. 두 맥주 이름은 브라이트가 위치한 창원 성산구 상남동과 고인돌 사거리에서 따왔다. 상남IPA를 한 모금 마셔본다. 오렌지, 자몽과 같은 감귤류 과일의 상큼한 향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깊은 쓴맛이 입안을 감싼다. 이번엔 고인돌 앰버 차례. 호박과 캐러멜이 연상되는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혀끝에 맴돈다. 상남IPA가 화사하고 싱그럽다면 고인돌 앰버는 부드럽고 따스하다. 같은 맥주지만 맛은 이렇게도 다르다.

브라이트 브루잉 컴퍼니의 이상민 양조사가 맥주를 잔에 따르고 있다. /우보라 기자

"지금은 개점 초기보다 대중적인 메뉴를 많이 추가한 편이에요. 수제 맥주를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으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럴 때마다 골고루 드셔보라고 권해요. 바로 다양성이 수제 맥주의 매력이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 (제 대표)

하지만 다품종 소량 제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주세율 때문이다. 맥주 세율은 출고가 기준 72%로 이 밖에 30%의 교육세를 부담해야 한다. 브라이트와 같은 소규모 맥주 제조자들이 이 세금을 다 내는 것은 아니다. 주세법 시행령 20조를 보면 소규모 맥주 제조자는 연간 출고량 가운데 100㎘ 이하까지는 60%, 100㎘ 초과분부터 300㎘ 이하까지는 40%, 300㎘ 초과분은 20%의 과세표준을 적용받는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세표준 감경만으로는 소규모 맥주 브루어리가 성장하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한다. 양조산업은 규모를 늘리는 만큼 제조 설비 또한 늘려야 하는데 많이 팔면 팔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해 투자비 회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비맥주·하이트진로·롯데주류 같은 대형 맥주 제조업체는 박리다매로 손실을 막을 수 있다지만 가장 규모가 작은 수제 맥주는 세금 때문에 박리다매를 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양조를 하다 보면 틀에 갇혀요. 판매를 하려면 원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상남IPA만 해도 다량의 홉이 들어가요. 알코올 도수는 7%로 시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형 제조업체 맥주(5%)에 비해 높죠. 알코올을 얻으려면 맥아의 전분에서 당분을 추출해야 하는데요. 당연히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얻으려면 더 많은 맥아가 필요해요. 일반적인 맥주에 비해 제조원가 자체가 높기 때문에 자연스레 출고가 상승으로 이어져요. 세율 부담이 커지죠. 갑갑할 때가 많아요." (이 양조사)

브라이트 브루잉 컴퍼니의 (왼쪽부터) 이상민 양조사, 제인창 대표, 남호석 셰프. /우보라 기자

이들은 지역민이 맛있는 수제 맥주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기고, 더불어 지역 경제와 문화가 부흥하려면 '우리 동네 맥주 마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창원문화재단이 마련한 '2017 창원 비어&뮤직 페스티벌'이 있었어요. 여름철 지역민이 맥주와 문화를 함께 즐기는 축제였는데 대기업 위주로 행사가 진행되고 있더라고요. 그런 것부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대표)

제 대표와 이 양조사는 자신들이 나고 자란 '창원'에서 길을 찾고 있다. 수제 맥주의 지역화인 셈이다. 최근 제주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제주 위트 에일'을 예로 들만하다. 수제맥주 브랜드 제주맥주는 제주시 한림읍에 연간 최대 2000만ℓ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양조장을 짓고 '제주 위트 에일'을 생산하고 있다. 이 맥주는 제주의 물과 유기농 감귤 껍질을 사용한 것이 특징으로 제주공항과 일부 관광지에서 한정 판매하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 제주 내 편의점까지 판로를 확대했다. 다행히 오는 4월부터 소규모 면허를 가진 양조장도 소매점 판매가 허용되면서 이들의 꿈은 현실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올해가 창원방문의 해잖아요. 마산가고파국화축제 때는 국화를, 진해군항제 때는 벚꽃을 사용한 맥주를 만드는 거예요. 맥주만큼 축제에 잘 어울리는 술도 없잖아요. 창원시민뿐 아니라 관광객에게 충분히 매력적일 거예요. 그리고 창원에서 생산한 맥주를 기념품처럼 구입해가는 것.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나요. 저희는 준비됐어요. 지자체가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네요." (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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