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보장한 것도 소용없던 야만시대
30년 전 악몽 딛고 검찰적폐 청산해주길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법전 속에서 쿨쿨 잠자고 있었다. 반독재 투쟁에 나선 시민들은 걸핏하면 어디론가 개 끌려가듯 끌려갔다. 더러는 닭장차에 실려 서울 변두리 길가에 내동댕이쳐졌다. 대학생들은 강제징집 되었고, '좌익용공' 딱지가 붙은 민주인사들은 컴컴한 지하 조사실에서 고문을 당하기 일쑤였다.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85년 봄, 당시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생 권인숙(당시 23세)은 경기도 부천시 소재 가스배출기업체에 '허명숙'이라는 가명으로 '위장취업'을 했다.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 가운데 '현장학습' 차원에서 더러 있던 일이었다. 사달이 난 것은 이듬해 소위 '인천 5·3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뒤였다. 권인숙은 6월 4일 영장도 없이 경기도 부천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위장취업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혐의였다.

조사는 연행된 당일 시작됐다. 경찰서장한테서 철저한 조사를 지시받은 상황실장은 문귀동 경사에게 조사를 맡겼다. 권인숙은 관련 혐의사실을 숨김없이 전부 시인하였다. 그러면 그에 응당한 사법조치가 취해지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문귀동은 대뜸 그에게 5·3사태 관련자의 행방을 대라고 추궁했다. 권인숙이 그런 내용을 알 리가 없었고 문귀동은 결국 기대했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다음 수순은 뻔했다. 6월 6일 새벽 4시경, 권인숙은 부천경찰서 상황실로 불려갔다. 문귀동은 권인숙의 팔을 뒤로하여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이어 다리 안쪽 사이에 각목을 끼워 형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다시 5·3사태 관련자의 행방을 대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권인숙 답은 마찬가지였다. 당연했다.

잠시 후 문귀동은 다른 형사들을 내보낸 후 권인숙을 조사실 옆에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끝내 악마의 패악을 저지를 참이었다. 밤 11시경, 문귀동은 방의 불을 껐다. 그러고는 뒷수갑이 채워진 권인숙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행과 성추행을 자행했다. 문귀동은 자신의 성기를 고문 도구로 쓰면서 저항불능 상태의 여성을 모독하고 유린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법은 한 여성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니, 법의 이름으로, 법을 비웃으며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권인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겪은 치욕을 세상에 드러내기로 했다. 조영래 변호사 등의 도움을 얻어 7월 3일 문귀동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였다. 사과는커녕 문귀동은 권인숙을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에 7월 5일 권인숙의 변호인단이 문귀동과 옥봉환 부천경찰서장 등 관련 경찰관 6명을 독직, 폭행 및 가혹행위 혐의로 고발했다. 문귀동은 다시 무고혐의로 맞고소했다. 그런 와중에 이 전대미문의 '성고문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권인숙 죽이기'는 계속됐다. 경찰은 7월 17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권인숙을 "급진좌파 사상에 물들고 성적도 불량한 가출자이며 '혁명을 위해 성적 수치심까지 이용'하는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하였다. 언론은 그때도 앵무새를 자처했다. 각 신문의 1면은 '성적 모욕 없었고 폭언·폭행만 있었다'라는 내용만 넘쳐났다. 이는 '검찰이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등 당국의 보도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성고문 가해자 문귀동이 처벌(징역 5년)을 받은 것은 87년 '6월 항쟁' 이듬해인 88년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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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신문과 방송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권인숙을 다시 보았다. 스물세 살, 꿈 많던 대학 4학년생은 온데간데없고 50대 중반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30년 세월은 어느새 그를 중년여성으로 만들어 놓았다. 못된 짓을 당하고도 감옥을 살고 나온 그는 94년 뒤늦게 미국으로 유학을 가 여성학 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작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여검사 성추행 사건이 그를 다시 세상 속으로 불러냈다. 당초 검찰은 '셀프 조사'를 하려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서 그를 대책위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그로선 30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검찰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너무도 크다. 최적임자답게 알찬 성과를 내줄 걸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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