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온 한국 문학 청년 프레드
한국 영화·사람에 매료 작년 6월 한국행 비행기
하효선 리좀 대표 권유로두 달 전 창원에 터 잡아
대화 서툴지만 어휘 강해 문학 작품 읽고 혼자 공부
역사적 장소·문학관 가고파

혹시 최근에 창동 거리를 돌아다니는 호리호리하고 젊은 서양 청년을 본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아마 프랑스 청년 프레드(24·본명 프레데릭 루 Frederic Loup)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창동예술촌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스빠스 리좀에서 게스트하우스 관리와 영화관 청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지는 6개월째, 창원에 온 지는 두 달 정도 되었답니다. 리좀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등산하러 다니거나, 한국 문학 책을 열심히 읽습니다. 도대체 이 청년은 왜 창원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요?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프레드가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덕분입니다. 홍상수 감독과 김기덕 감독 영화는 유달리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김기덕 감독이 2016년 만든 영화 <그물>이 지난해 처음 열린 프랑스 정치영화제(Festival Du Film Politique)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프레드 역시 김기덕 감독 영화에 푹 빠졌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는 다 봤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고요. 여기에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한국인 유학생들을 만났는데, 다들 인상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직접 가보기로 합니다.

프레드 씨.

지난해 6월, 프레드는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정처 없이 창원과 서울을 오가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다 에스빠스 리좀 하효선 대표 권유로 창동에 눌러앉은 거지요.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하 대표가 프랑스어에 능통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프레드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대표님 프랑스어 잘하셔서 창원 왔어요. 지하철 없지만 사람들 포근해요. 가족 같은 분위기."

◇문학으로 독학한 문어체 한국어

위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 프레드는 아직 우리말 대화가 서툽니다. 그런데 그가 쓰는 어휘는 남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가선이 지다. 문약하다. 프레드가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가선(-線)은 '쌍꺼풀이 진 눈시울의 주름진 금'을 뜻합니다. 문약(文弱)이란 말은 '글에만 열중하여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나약한 상태'를 말하죠. 웬만한 젊은이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문어체 단어입니다. 이런 말들을 어디서 배운 걸까요.

프레드가 읽은 조정래 <유형의 땅>.

프레드는 한국 문학 작품을 좋아합니다. 우리말도 모두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독학한 거라는군요. 최근 읽은 것을 물어보니 조정래의 <유형의 땅>(2017),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2017)을 읽었다는군요. 그리고 창원에 오고서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우무석 시인의 시집을 죄다 읽었답니다.

프레드는 특히 책을 읽다 옛날 말이나 어려운 단어를 만나면 좋아합니다. 포털 사이트가 서비스하는 인터넷 사전으로 검색하면서 공부를 하죠. 그가 '갸름하다'같이 사물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를 이해하고 실제에 맞게 구사하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그는 한국 가수 중 '빈지노'와 '에픽하이'를 좋아합니다. 특히 이들 노래 중 'Lo-fi hiphop' 장르를 즐겨 듣는다고 합니다. 이는 녹음실에서 깔끔하게 만든 곡이 아니라 창고나 방에서 녹음해 어느 정도 잡음이 그대로 들어간 느낌으로 만든 힙합곡을 말합니다. 프레드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일부러 후줄근한 음감을 묻힌 노래의 유형'이라고 답했습니다. 그의 모바일 메신저 알림말은 '꼬리가 길면 밟히느라'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비빔밥인데, 매운 것은 못 먹기에 고추장은 절대 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격한 채식주의자'가 아닌 유제품과 생선 종류는 먹을 줄 아는 '나지막한' 채식주의자라고 설명합니다. 어휘 사용이 멋지지 않나요?

프레드가 읽은 우무석 <10월의 구름들>.

◇한국 역사, 문학 더 알고파

프레드는 우리나라 역사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분단국가가 된 원인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하는군요. 그가 조정래의 소설을 열심히 읽는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

"서울 서점 쏘다니다 (분단 관련) 책 읽게 됐어요. 분단 현실 지독해요. 분단 여파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는 요즘 시간이 비면 무학산을 오르거나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창동예술촌의 무료한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도 있습니다. 조금 더 먼 진해 장복산도 가보고 싶고, 한국 역사를 알 수 있는 장소도 가보고 싶고, 여러 문학관도 방문해보고 싶다 합니다. 두루두루 다니며 '사회적 교제'도 해보고 싶다는군요. 그래서 우리는 프레드와 함께 무턱대고 길을 나서볼까 합니다. 첫 여행지는 하동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곧 '프랑스 청년 프레드와 함께하는 경남 문화 탐방(가제)' 연재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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