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꺼낸 말]중년 시인 2인 신간

창원 김시탁 시인의 시집 <어제에게 미안하다>와 부산 김성배 시인의 시집 <오늘이 달린다>는 모두 지난달 출간된 것이다. 이들 중년 사내가 일상에서 건진 시어들은 애잔하다. 애잔함은 어쩌면 '늙음'을 자각하면서 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애잔함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여전히 더듬대면서도 삶을 끌어안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시집 제목처럼 '어제'에서 '오늘'을 지나 내일로 향할 길목에 두 시집이 자리 잡고 있다.

◇김시탁 <어제에게 미안하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돌이킬수록 탄식의 망치가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쳐 선혈이 낭자했다/ 빈혈의 희망이 절망의 손을 더듬었다"

-'어제에게 미안하다' 중에서

"살아간다는 건 채워 간다는 것 채워 간다는 건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그것 다 부질없음을 빈손 되어보니 알겠네" -'빈손' 중에서

김시탁 시인의 <어제에게 미안하다> 표지.

아버지의 연배가 되면 삶이 좀 익숙해질까. 하지만, 삶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숙제다. 익숙해서 잘 안다고 생각한 것들이 낯설어질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이제야 다른 삶의 속내도 들여다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컨대 시인이 잡초를 뽑으며 문득 느낀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이다.

"풀을 뽑는다/ 텃밭 고랑에 군락을 이룬/ 잡초를 뽑는다/ 죄라면 내 양식 가까이/ 스스로 생명을 내린 것/ 내 양식의 영양을 공유한 것/ 그것이 제거되어야 할 뿌리째 뽑혀야 할 명분이다" -'농장일기 6 잡초' 중에서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익숙한 일들 속에도 참 미안한 일들이 많다.

"오늘 하루를 잘 데리고 살았다/질식시킨 어제에게 미안하다/지나간 오후 네 시에게 미안하다/너의 안부를 묻지 않은 하루는 길고/나의 과거를 지우는 하루는 짧다/짧은 것은 짧아서 미안하고 긴 것은 길어서/미안하다 미안한 시간들이 하루를 데려가도/새로운 하루는 금방 다가왔다"

-'하루' 중에서

다른 것들의 속내를 읽고 보니 삶이란 어쩌면 비틀거리는 걸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비틀거리는 것에 시인의 따스한 시선이 내린다.

"지팡이를 짚은 사내 하나의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더듬으면 비틀비틀 걸어갔다/ 세상의 한 모퉁이가 기울었다 일어났다/그의 등 뒤로 내려앉은 햇살이 눈부시다"

-'마음의 눈' 중에서

◇김성배 <오늘이 달린다> 

중년 시인 김성배 역시 어느덧 아버지의 연배가 됐다. 오늘을 묵묵히 걸으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삶을 돌아보는 나이가 된 것이다. 돌아본 그곳에 자기와 비슷한 나이였을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김성배 시인의 <오늘이 달린다> 표지.

"허리춤에 고향을 남기고 빈손의 걸음으로 돌아오는 길 새로운 버스정류소의 아스팔트 길에 길게 누워 계시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햇살에 눈이 부셨다" -'발전論' 중에서

"아버지는 방에 기대어 있다/모로 눕거나 장롱을 등지고 계신다/ 언제나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날마다 낯선 타향을 바라보던/창문을 닫아 잃어버린 민둥산처럼/하루가 아버지의 방에서 누워 있다"

-'아버지의 방' 중에서

지난 시절 아버지의 자리에는 이제 시인 자신이 서 있다. 가만히 살펴보는 오늘, 중년 사내의 긴 그림자가 다시 묵묵히 길을 나선다.

"구겨진 하루가 옷걸이에 그림자로 있네요 심심한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네요 기침을 했어요 오랫동안 달빛을 배고 있던 아버지의 빈 방, 벽화를 그려요" -'달빛' 중에서

긴 그림자를 인정하면서, 풍경을 보는 시인의 말들에 활기가 돈다.

"옥상의 푸른 물탱크가 나부끼는 빨래와 함께 뱃고동을 울린다 항구의 배들이 폴짝폴짝 쪽문마다 꽃등을 심는다 층층이 배들이 쌓인다"

-'바다가 보이는 집-산복도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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