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양심선언은 충격 그 자체다. 은밀한 장소도 아닌 공개된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한 채 여검사를 성추행한 고위직 남자검사라니 상식선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것도 장관까지 참석한 자리였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뒤가 더 문제다. 피해 당사자의 증언을 존중해 유추하자면 내부경로를 통해 제기된 사실규명이나 사과를 받을 기회는 봉쇄됐고 오히려 인사 불이익이라는 역풍이 닥친 것이다. 지역이 지역인 만큼 경남의 여성단체가 가장 먼저 검찰청으로 달려가 성토대회를 벌인 것은 당연하다. 분노하는 민심을 전하고 정의사회 회복을 위한 검찰의 자발적인 조처를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전에 우선돼야 할 것은 공식사과와 가해자 처벌임은 물론이다. 들끓는 기세로 보아 적당한 선에서 타협될 성질의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사태가 심상치않음을 간파한 검찰이 곧바로 진상 조사단을 발족시켜 신속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다. 적절한 판단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패가 아니라 내용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8년 동안 검찰 자체의 조직체계와 윤리의식으로는 만연한 성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상명하복과 권위주의에 뿌리를 둔 조직문화가 서 검사와 연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제2, 제3의 이른바 '미투' 사태를 제대로 받아들여 실추된 검찰의 명예를 되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여성 검사장이 책임을 맡아 조사팀을 지휘함으로써 모르긴 해도 그동안 묻혔던 부끄럽고 황당한 일들이 다수 그물에 걸려 검찰의 일대 쇄신을 선도하는 가늠자 역할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돼준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참에 속으로 끙끙 앓으며 심적 고통을 이겨내는데만 골몰한 채 말 못하는 수난의 시간을 살아온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 감연히 자신의 인간적 의지에 호응하는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봄 직하다. 이왕 고름이 터진 마당에 한꺼번에 발벗고나서 평등풍토를 정착시킬 수만 있다면 공조직도 더불어 역시 야만성을 벗고 인본주의에 기반한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지 않겠는가. 숨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뿐더러 바꿀 수도 없다. 그런 공감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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