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여고부 팀 창단에 매진하는 까닭

군 생활 중 처음 접한 세팍타크로

정장안(57) 경남세팍타크로협회 전무이사. 원래 필드하키 국가대표까지 지낸 하키맨이었던 그지만 대한민국 여자 세팍타크로의 산파이자 산증인이다.

지금도 하키 명가를 지켜가고 있는 김해고를 거쳐 부산 동의대로 진학해서도 하키 선수를 지냈다. 김해고 시절에는 국가대표로 발탁돼 활약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무렵 실업팀에서 스카우트 제이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는 미련 없이 군 복무를 선택했다.

1985년 ROTC 23기로 임관한 그는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선수관리 업무를 맡으면서 세팍타크로를 처음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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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장안 경남세팍타크로협회 전무이사. / 정성인 기자

"제가 소령으로 예편했는데, 대위로 특전사 있을 때 상무부대에 선수관리장교로 몇 년 있었어요. 당시 노진수(배구), 김동욱(농구), 양준혁(야구) 이런 쟁쟁한 선수들이 상무에서 복무하고 있었죠. 제가 하는 일이란 게 시합 나가서 지고 오면 목봉 체조로 벌주고 그런 거였죠. 당시 한국체대, 상무, 국립대 등에서 세팍타크로를 갓 도입하던 시기였어요. 태권도나 축구 선수 중 그 종목으로는 크게 기대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뽑아서 세팍타크로팀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들긴 했지만 제가 뭐 지도자도 아니고 하니 보기만 했지, 할 줄은 몰랐어요."

엉겁결에 시작한 세팍타크로 지도자의 길

소령으로 예편하고 한일전산여고(당시 한일여자상업고) 체육 교사로 부임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중 지금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을 하는 이태규 씨하고 허정욱 협회 사무총장, 대한체육회 직원이 정 전무를 학교로 찾아왔다. 세팍타크로와 함께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유치는 해뒀는데, 동남아가 강세를 보이는 세팍타크로는 국내 기반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팀도 창단하고 국내 기반을 마련해야겠는데 사람이 없었다. 상무부대에서 팀을 관리했던 게 레이더망에 걸려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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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장안 경남세팍타크로협회 전무이사. / 정성인 기자

"수업하고 있는데 찾아왔더라고요. 저는 '인사하러 왔나' 하면서 반갑다고 교장실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과정에 대한체육회가 지원해줄 테니 태국가서 교육 좀 받고 와서 세팍타크로 보급에 나서주면 좋겠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느냐고 했더니 거기 가면 스포츠클럽 안에 들어가서 배우고 오면 된다는 겁니다. 한 달 후에 교장이 허락하더라고요. 그래 6개월을 갔습니다. 가니 밥도 못 먹겠고, 영어도 모르고, 너무 복잡하고 우리로 보면 체육고등학교 기숙사에 자면서 배우고 돌아왔죠."

그리고 한 번 더 연수를 갔다 왔다. 1997년 9월 한일여고에서 팀을 창단했다. 국내 첫 여자 세팍타크로팀이다.

창단은 했는데, 기량을 검증하고 경쟁할 팀이 없었다. 당시 스포츠신문에 '낭자와 어떤 팀이라도 붙어봐라'라고 헤드라인이 떴지만 붙을 팀이 없었던 것. 올림픽펜싱경기장에서 남자고등부와 시범경기를 펼쳤고, 이듬해부터 경북 전북에서 팀이 창단되면서 비로소 기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공을 넘기기만 해도 국가대표가 되던 시절'이긴 했지만 한일여상은 회장기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을 3번 달성했다. 9년 동안 최강자 자리를 지켰다는 뜻이다.

"당시 좀 특별한 상황이긴 했어요. 한일여상은 야간 고등학교였습니다. 야간에 수업 다 듣고, 주간에는, 정말 온종일 운동만 해도 되던 시절이었죠.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많이 하는데 다른 팀은 따라올 수가 없는 거죠. 그때 주역이 지금 경남체육회 이진희 코치 등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죠."

"여고부가 활성화돼야 선수 공급 이뤄져"

2002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급하게 보급된 세팍타크로는 이후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의 메달밭이 됐다. 1998년 여자 국가대표 감독을 맡은 그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어서 아시안게임이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데 그는 부산, 도하, 광저우, 인천까지 아시안게임에 4번을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했다.

2015년부터는 경남 세팍타크로에 전력하고 있다. 한일전산여고를 시작으로 창원전문대, 경남체육회 팀을 연이어 창단하며 연계육성을 완성한 정 감독은 현재는 없어진 여고부 창단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초·중학교에서 세팍타크로를 하는 선수가 없다 보니 태권도나 축구 선수 중에서 뽑아 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선수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팀 유지와 선수 발굴에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그가 여고부 창단에 매진하는 까닭은 선수 노쇠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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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체육회 세팍타크로 선수들과 함께한 정장안 전무이사(뒷줄 가운데). / 정성인 기자

적어도 올해 팀을 창단해 1~2학년 선수를 키워내야 창원전문대~일반부로 선수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년 후면 한일전산여고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대부분 34~35세에 이르러 더는 선수 생활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일여고 팀이 없어지면서 선수 공급이 한동안 안되고 있다"는 그는 "지금 팀이 생겨야 선수들이 3년 후에 배출되는데 그때까지는 지금 선수로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지만 더는 어렵다"고 말했다.

협회 전무이사와 함께 경남체육회 남·여 세팍타크로 감독도 맡고 있는 그는 함께 모여 훈련할 수 있는 장소 선정에도 공을 쏟고 있다.

현재 여자일반부는 한일여고에서, 남자일반부와 남고부는 고성 경남항공고 체육관에서 각각 훈련하고 있다. 여고부를 창단하더라도 고성이나 함안, 김해 등 한곳에 모여 다 같이 운동하는 것이 시너지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은 창단할 여고가 있는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세팍타크로의 대중화이다. 공중을 날아올라 화려한 발차기로 '원샷 원킬'하는 종목 특성상 일반인이 따라 하기는 어려운 종목이다. 공을 발로 차서 넘기는 족구 종목은 굉장히 활성화돼있고 일반인도 손쉽게 함께할 수 있는 데 착안해서 '바운드 타크로'를 도입해 생활체육으로 보급하려는 것이다.

세팍타크로는 공이 바닥에 닿으면 안 된다. 족구는 한번 공격에 3번까지 공을 바운드시켜도 된다. 이를 혼용해 세팍타크로 룰과 공으로 경기를 하되 한번 공격에 1번은 바운드를 허용하자는 개념이다.

"현재 동호회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은 전직 선수 출신 등 제한적이지만, 고난도 기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훨씬 대중적인 스포츠로 만들어야 종목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고 세계세팍타크로협회에서 관련 룰을 만들었고, 한국에도 보급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키 선수에서 세팍타크로 산파역으로 바뀐 인생행로에서 그는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가며 경남 세팍타크로의 큰 기둥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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