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관동동 460-1번지 관동고분공원에 있는 장유의 옛 모습을 복원해 놓은 곳입니다.

여기에는 주로 기둥 위에 집을 지은 고상가옥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장유지역에 고상건물, 즉 고상가옥 형태의 특이한 건축물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알려면 장유의 특별한 역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장유지역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최소 청동기 시대부터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수로왕이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을 때부터라고 합니다.

서기 48년 허황옥이 우리나라로 들어올 때 수로왕의 처남 장유화상(허보옥)도 같이 오게 됩니다.

장유화상(허보옥)이 지금의 장유면에 장유사를 세우고 머물었는데, 장유라는 지명도 이때 생겨나게 되고 사람들의 왕래도 활발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정착하면서 여러 가지 주거형태들도 나타나게 되는데, 청동기부터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상가옥의 형태가 이 무렵부터 점점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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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시 관동동 460-1번지 관동고분공원에 있는 장유 옛모습을 복원해 놓은 곳입니다. / 김구연 기자

가야가 신라에 완전 복속된 후에는 장유지역 독특한 건축 방식으로 자리 잡아 오다가 삼국시대에는 영남지역 대부분의 생활 유적에서 고상건물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상가옥의 주거 형태가 발견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장유신도시 개발과정에서라고 합니다.

당시 능동, 대청, 윗덕정, 아랫덕정, 신안마을 일대에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들이 발견되었는데 아랫덕정에서 고상건물들의 흔적이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바닥을 만든 건물을 고상건물이라고 하는데 주로 비가 많고 더운 지역의 건축방식이라고 합니다.

땅에서 나오는 습기를 방지하고 짐승이나 독충의 피해를 막고 원두막처럼 여름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습하지도 덥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고상건물이 발견된 것은 벼농사의 보급과 함께 나타난 건축형태입니다.

통풍이 잘되고 습기를 막을 수 있어 곡식 보관에 대부분 사용되거나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용으로 건축되었으며 일부는 주거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곳에 복원되어 있는 고상가옥들은 당시의 건물 형태를 비슷하게 복원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나 삼국의 생활환경을 잘 알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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