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커피가 맛이 없는 주요한 이유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커피를 로스팅하기 전 생두 상태에서, 섞고 벌레 먹은 문제 있는 생두인 '결점두'를 가려내지 않고 볶는 것이 첫째 이유였습니다. 지나치게 과하게 볶아진 커피콩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의 존재와 이로 인한 탄 맛과 거부감 있는 쓴맛이 두 번째 이유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로스팅 도구를 세척하지 않고 청소하지 않아 로스팅 도구에 눌러붙은 기름때와 찌꺼기가 생두를 볶는 과정에서 생두에 스며드는 것이 세 번째 이유였습니다. 

위의 세 가지가 커피가 맛이 없는 이유라면 이 세 가지를 피하는 것이 맛있고 좋은 커피를 추출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양질의 생두를 구입하고, 이들 생두에서 섞고 벌레 먹은 '결점두'를 가려내고, 탄 맛과 거부감 있는 쓴맛이 나지 않게 적정한 수준으로 로스팅하고, 로스팅 도구를 매일 깨끗이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것이 좋은 커피 추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필요조건이 갖추어졌다고 무조건 좋은 커피가 추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더라도, 요리사의 능력과 기술 그리고 사용되는 도구에 따라서 음식의 맛이 크게 달라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커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커피를 추출하는 사람의 능력과 기술, 사용 도구 그리고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물의 수준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음식도 요리 시에 물의 상태가 중요하겠지만 음료인 커피의 경우, 물의 중요성은 커피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먼저 커피 추출 시에 사용되는 도구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합니다. 우리가 카페에서 흔히 만나는 도구가 바로 커피 추출 기계인 '에스프레소' 머신입니다. 이에 반해 손으로 직접 추출하는 도구가 '핸드드립' 도구들입니다. 상기의 필요조건을 모두 동일하게 만족시킨 원두를 기계와 핸드드립 도구로 추출해서 비교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저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기계로 추출한 커피로는 핸드드립의 미묘하고 고급스러운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커피를 분쇄하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사용되는 원두는 아주 미세하고 균일하게 분쇄를 합니다. 하지만 핸드드립의 경우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사용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굵게 분쇄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동일한 커피가 분쇄 정도를 달리해서 다른 방식으로 추출하면 전혀 다른 커피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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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동 그라인더.

인간관계에서 '불가근, 불가원'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당한 거리나 관계가 없을 때는 잘 모르지만, 너무 상대를 깊숙이 알게 되면, 좋은 인상이나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많이 가지게 되는 경향을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경험하곤 합니다. 커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쇄도가 가는 커피는 통상적으로 굵은 커피보다 훨씬 강한 쓴맛과 신맛을 내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깊이 알고 상대의 됨됨이를 적나라하게 아는 순간 신비감이나 신뢰감 보다는 실망과 원망이 앞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커피도 분쇄도가 너무 미세하면 커피 본연의 풍부한 맛과 향 그리고 깊은 맛보다는 획일화된 신맛과 쓴맛이 느껴지는 하향평준화로 수렴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분쇄도가 굵어질수록 적당한 대인관계가 상대의 장점만 보게 만드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그윽하고 깊은 향과 감칠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필자는 커피를 추출할 때마다, 한 잔의 단순한 커피이지만, 그 의미는 사람의 인생과 너무도 닮았다고 느끼곤 합니다. 바로 이점이 커피에 몰입하게 만드는 특별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산업혁명과 고도성장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람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행하는 감성적인 면보다는 기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져 왔습니다. 기계화와 대량 생산 그리고 자동화로 대변되는 산업화는 모든 것들을 획일화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추출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라인딩(분쇄) 과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중에서 팔리는 많은 분쇄기들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분쇄 후의 커피 알갱이의 균일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기계 생산업자의 생각일 수도 있으나, 커피의 깊은 향과 맛을 추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선의를 가질 때, 그 사회는 잘 유지될 것입니다. 어떤 한 분야의 직업과 비전이 좋다고 모두 한 곳에 몰입하면 그 사회의 균형은 깨어지고, 많은 문제가 양산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각자의 개성이 발현되고 존중되면서,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그 사회는 건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커피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필자는 고가의 그라인딩 장비에서 아주 저렴한 그라인딩 장비로 동일한 커피를 분쇄해서 드립으로 추출해서 그 맛과 향을 서로 비교해 본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저가의 장비로 투박하게 그라인딩(분쇄)해서 분쇄도의 차이가 일정하지 않은 커피들이 추출 후 맛을 보면, 그 맛과 향이 더 뛰어나다는 역설적인 경험을 자주 한 일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분쇄 정도가 균일하지 않으면, 동일한 조건에서 추출되는 커피의 맛과 향 그리고 강도가 차이가 나고, 다양한 맛과 향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섞일 때 사람의 인식으로 계량화 할 수 없는 오묘하고 깊은 맛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분쇄도가 미세하고 균일한 커피머신 보다는, 상대적으로 분쇄도가 굵은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가 맛과 향이 더 뛰어나고, 동일한 핸드드립이라면 분쇄도가 불규칙하고 균일하지 않은 상태가 추출 후 더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커피에 관심을 가지신 독자 분들이시라면, 동일한 커피를 기계와 핸드드립으로, 같은 핸드드립과 같은 분쇄 정도라도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균일한 분쇄와 저가 장비를 이용한 상대적으로 균일함이 떨어지는 분쇄를 비교해서 추출해 보시면 필자의 의견에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수동 그라인더(분쇄기)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가격은 저렴하고, 분쇄 정도는 일정하지 않으나, 그 결과물의 맛과 향은 어떤 고가의 장비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기계 커피와 핸드드립의 다른 측면에서의 비교와 물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는 다음 호에서 함께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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