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밀양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사망 39명과 부상 151명이다. 정부는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화재원인을 찾고 있다.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전 단계다. 그러나 정부의 행태는 대단히 잘못됐다. 발화원인과 인명피해가 늘어난 데만 초점을 맞추고, 화재예방을 소홀히 한 부분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에 있어 재난예방이 주된 임무고, 재난의 수습과 대책은 그다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국가의 임무 방기를 덮고자 함인지?

참사의 원인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세종병원 1층 탕비실 천장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탕비실은 애초에 없던 간이시설로, 건축대장에 표시돼 있지 않다. 희생자가 많아진 이유는 세종병원과 요양병원을 연결하는 통로 천장을 막아서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했으며, 1층 방화문의 임의철거로 유독가스가 2층으로 급속히 확산됐고, 비상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재의 원인은 불법공간에서 비롯되었고, 피해를 키운 원인 역시 불법 구조물과 소홀한 시설관리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병원의 과실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고, 처벌 범위도 여기에 국한될 것이다. 화재의 발생지점, 시신이 몰려 있는 장소, 희생자의 사망원인 등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정부도 희생자 유족도 다수 국민도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국가의 의무이다. 헌법 제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러한 대형 참사는 반복될 것이다.

먼저 밀양시청의 직무유기이다. 화재의 원인이 된 탕비실과 피해를 키운 천장의 가림막은 불법 구조물이다. 이외 2006년에 지은 세종병원 1층 통로, 4층 창고, 5층 창고 등 147㎡도 불법이다. 2007년에 지은 세종요양병원 2층 창고와 6층 사무실 등 19.48㎡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밀양시는 2011년부터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8년간 이행강제금 3000여만 원만 부과했을 뿐 철거나 기타 관리조치를 하지 않았다. 불법 건축물이 붕괴와 화재 등 재난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몰랐든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든 밀양시청은 직무유기를 벗어날 수 없다.

다음으로 밀양소방서의 직무유기이다. 소방서에는 예방안전과라는 부서가 있다. 밀양소방서에는 10명의 소방관이 여기에 근무한다. 업무는 재난예방과 이를 위한 대국민 홍보 등이다. 불법 구조물이 안전사고에 취약하다는 점은 기본상식이다. 따라서 소방서가 시청과 유기적 관계를 구축하여 이들에 대해 관리를 해야 했었다. 탁상행정도 문제다. 밀양소방서는 2014~2017년 "세종요양병원의 소방안전점검에서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방점검을 한 민간업체만 믿고 3년간 단 한 번도 현장 점검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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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기업은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눈앞의 달콤한 이익을 좇아 불법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국가의 제1차적 의무는 이들에게 불법을 고지하고 교육시키며 홍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법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가하고 재발방지책을 세우는 것은 그다음이다.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고, 제1차적 의무방기에 대한 조사는 빼버리고 불법을 저지른 주체와 대상만 조사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를 빼먹었기 때문에, 이는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로서 50%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재난의 반복을 막으려면 국가와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대비책도 양 측면에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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