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니? 뽈뽀리 타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재미를

두어 달 전에 원래 타던 BMW R1200RT는 그대로 두고 작은 모터사이클 한 대를 더 샀다. 엔진배기량 1200cc짜리 독일제 대형모터사이클이 있는데 또 샀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큰 모터사이클은 한번 타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헬멧이나 장갑을 착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복장도 보호대가 내장된 라이딩 기어도 갖춰 입어야 한다. 주말에 모터사이클을 못 타면 출퇴근 때라도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준비를 하려면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겨우 13km(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 남짓 타려고 그렇게 준비를 하고 그 큰 모터사이클을 움직여야 한다니 그냥 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이럴 때 작은 모터사이클이 필요하다. 헬멧과 장갑 정도만 챙겨서 살랑살랑 타고 다닐 수 있는, 그리고 출퇴근 뿐만 아니라 휴일에 동네 마실 다니기도 좋은 모터사이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흔히 말하는 '뽈뽀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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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정 마당에서 바라보는 전경이다. 오른쪽 650년 느티나무와 낙동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평온하고 아름답다. 이 자리는 원래 절터였다고 한다. / 조재영 기자

 

사실 몇 년 전에 나는 이런 작은 모터사이클을 갖고 있었다. 대림오토바이 시티에이스110 이라는 모델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엔진 배기량 110cc짜리 빨간색 모터사이클이었다. 바로 우체국 집배원들이 타는 기종이다. 연비, 내구성이 좋다. 무엇보다 클러치가 없는 세미오토 방식이라서 기어 변속이 쉽고 시동이 꺼지지 않아 운전하기 매우 편리하다. 스쿠터도 시동이 꺼지지 않아서 편리하지만 스쿠터는 기어 변속을 할 수 없는 방식이라서 약간 굼뜬 편이다. 시티에이스110은 4단 기어가 있어서 가속력도 좋고 언덕을 오를 때 기어를 저단으로 내려서 힘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종류의 모터사이클을 통칭해서 '커브' 혹은 '언더본' 스타일이라고 한다. 일본 혼다에서 이런 모양으로 처음 만든 제품이 '커브'였다. 커브가 대히트를 치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일본 업체와 기술제휴를 하거나, 기술을 베껴서 같은 방식의 모터사이클을 만들었다. '언더본'은 혼다 커브의 차대(뼈대)가 아래쪽으로 휘어있고 그 아래쪽에 엔진이 붙어 있는 구조인데, 세계 각국에서 베낀 것들도 모두 같은 구조여서 생겨난 말이다.

시티에이스110을 갖고 있을 때는 할리데이비슨 883R을 타던 때였다. 시티에이스110은 휴일에 집 주위를 돌아다닐 때 타고 다녔는데, 가끔 그걸 타고 함안에서 창원에 있는 출입처까지 타고 간 적도 있다. 한번은 시내에서 각시를 만나기로 했다. 지인과 함께 있던 각시는 지인에게 내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올 거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시티에이스110을 타고 출근한 날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각시 지인의 얼굴에서 실망 혹은 의아한 표정을 읽었다. 아마도 내가 크고 멋진 모터사이클을 타고 등장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고 비싼 것에만 높은 점수를 주는 성향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껍데기만 보고 평가하는 것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이번에 구입한 작은 모터사이클은 시티에이스110의 전 모델인 '시티100'이다. 엔진 배기량이 100cc이고 더 구닥다리다. 예전에 갖고 있던 시티에이스110의 선배격이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카울을 뜯어내고 도색을 새로 해 빈티지하게 꾸미던 시티100을 인터넷 중고장터에 매물로 내놓은 것을 구입했다.

돈을 송금해주고 화물로 받았다. 집 인근 택배회사 화물집하장에 가서 모터사이클을 찾았는데, 다른 화물과 섞여 실려 오면서 무거운 물건을 위에 올렸던 것인지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다.

집에 끌고 와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원래대로 복원하기가 어려울 듯했다. 인터넷으로 새 핸들을 주문했다. 며칠 뒤에 새 핸들이 도착하자마자 집 지하주차장에서 핸들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또 겨울에 탈 때 손이 시리지 않도록 토시도 달고, 없던 백미러도 달았다. 이런 작업들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새 핸들과 토시, 백미러를 장착한 뒤 지하주차장을 천천히 여러 바퀴 돌았다. 스쳐 지나가던 주민이 "지하주차장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난리야?"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주차장은 자동차(모터사이클 포함)를 위한 공간이고, 나는 스스로 핸들을 교체했다는 기쁨에 젖어있었다.

광려천 둑길

토요일이었다. 바람이 불어서 제법 추운 날이었다. 찬바람이 스며들지 않도록 옷을 두껍게 입고 부츠도 신었다. 두꺼운 버프와 헬멧을 썼다. 하지만 장갑은 겨울용이 아니라 봄가을 용을 꼈다. 토시를 달아놓았기 때문에 손은 얇은 장갑을 껴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집을 나서자마자 일반도로가 아닌 광려천 둑길로 접어들었다. 원래는 주로 농업용으로 쓰이던 도로였는데 4대강 사업 후 자전거도로가 됐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좋겠다. 전용도로가 많아서." 모터사이클은 '모터사이클 전용도로'는 커녕 일반도로에서조차도 시내버스나 화물트럭과 함께 하위차로로만 달려야 하고 자동차전용도로(고속도로 포함)에는 아예 진입조차 할 수 없다. 사실 '모터사이클 전용도로'는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나머지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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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군 칠원면 광려천. 영하에 가까운 차가운 날씨인데도 낚시꾼 2명이 훌치기 낚시를 하고 있다. 갈고리를 낚시줄 끝에 매달아 던져서 빠르게 잡아당기면 덩치 큰 물고기가 갈고리에 걸려 딸려온다. / 조재영 기자

 

함안군 칠원면 오곡리 광려천 둑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다 대산면으로 빠졌다. 대산면 장암리에 가면 '두물머리'가 있다. '두물머리' 하면 사람들은 흔히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 있는, 큰 나무가 서 있는 두물머리를 떠올린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한줄기로 합치는 곳이다.

두물머리가 양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쳐서 한 몸이 되는 지점, 바로 그 두물머리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있다. 대산면 장암리에서 남강을 건너면 의령군 지정면이고, 낙동강을 건너면 창녕군 남지읍이다.

장암들을 가로질러 강둑에 올라서면 거대한 두 물길이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낙동강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오고, 남강은 서에서 동으로 흘러오다 이곳에서 만나는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세워놓고 둑길을 잠시 걸어보지만, 휙 휙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눈이 시렸다. 강둑에 벤치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옆에 나무가 있지만 아직 작아서 그늘을 만들어줄 만큼은 아니다. 따듯한 봄날 도시락을 싸 와서 잠시 놀다 가면 좋겠다. 건너편 의령군 지정면 남강 둔치에는 배와 바지선이 녹슨 채 방치되고 있는 게 보인다. 아마도 4대강 사업 때 쓰였던 배와 바지선일 것이다.

모터사이클 머리를 돌려 강둑길을 되돌아와서 산기슭으로 나 있는 벼랑길을 오른다. 벼랑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데 좁고 경사가 급하다. 바닥에 자전거길 표시가 되어있다. 워낙 경사가 심해서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은 몰라도 오르는 방향은 타고 오르기가 어렵겠다.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는 십중팔구 끌고 올라야 할 길이다. 비록 작지만 엔진이 달려있는 모터사이클조차도 빌빌거릴 정도의 급경사다. 하지만 길을 따라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더 멀리 보이고 풍경은 더 아름다워진다. 속도는 느려지고 눈길은 자꾸만 강을 향한다.

푯말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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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다. 왼쪽 물줄기가 남강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물줄기가 낙동강이다. / 조재영 기자

 

합강정

'합강정'.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산 위가 아니라 강 쪽이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합강정이 나타난다. 강 바로 위에 자리를 잡은 조선시대 건물이다.

안내문을 보면, 합강정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용화산 기슭, 강변에 있으며 1633년에 지은 기와집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고 공조좌랑을 지낸 조임도가 은거하던 집이다. 조임도는 인조반정 후 학문과 행동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되어 공조좌랑을 지냈지만 왕실 대군의 사부로 부름을 받았으나 이를 사양하고 이곳 합강정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담장 앞에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두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만큼 장대하다. 아마도 이 집을 지을 때 심은 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본다면 이 나무는 합강정 400년 세월을 지켜온 셈이다.

합강정 마루에 잠시 걸터앉았다. 건물은 남동쪽으로 향해 있는데 햇볕이 잘 드는 자리였다. 낮은 담장 너머로 창녕 남지 방향의 낙동강 잘 보였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라면 합강정 일대가 더욱 아름다울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합강정을 나와 담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어서 강물이 바닷물처럼 철썩거렸다.

발을 힘차게 굴려서 모터사이클의 시동을 걸었다. 소형 모터사이클은 배터리가 없어도 킥스타터를 발로 밟아서 시동을 걸 수 있다. 비상시에는 이런 점이 좋다. 대형모터사이클은 사람의 다리 힘으로는 시동을 걸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킥스타터가 달려 있지 않다. 그래서 배터리가 방전되면 시동을 걸 수 없다. 몇 사람이 뒤에서 밀어서 시동을 걸거나 높은 곳으로 밀고 올라가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탄력이 붙었을 때 기어를 넣어서 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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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낙동강변에 있는 합강정. 400년 된 건물과 400년 세월을 견딘 은행나무가 인상적이다. 그 앞에 서 있는 뽈뽀리도 있는 듯 없는 듯 합강정의 일부인 것처럼 잘 어울린다. / 조재영 기자

 

반구정

합강정 주차장을 나선 모터사이클은 다시 가파른 길을 올랐다. 배기량 100cc 엔진에게는 그 가파른 길이 버거웠던지 힘이 없다. 기어를 2단, 1단까지 내려야 겨우 오른다. 용화산 기슭을 따라가는 길은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면 꽉 찰 만큼 좁다. 작은 등성이 하나를 넘자 이번에도 갈림길이 나타나고 강 쪽으로 난 길옆에 '반구정'이라는 푯말이 있다. 반구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굽은 길을 천천히 내려가자 덩치 큰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앞에 작은 재실 같은 건물 뒷모습이 보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반구정은 조선 중기 학자 조방(1557~1638)이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다. 조방은 함안 출생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의 현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를 따라 정암진과 기강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창녕 화왕산성에서 공을 세웠다. 조방은 난이 평정되자 낙동강 우포의 말바위 위에 반구정을 짓고 마주 바라보이는 곽재우의 청암정을 수시로 오가며 은둔 생활을 했다. 반구정은 뒷날 주위가 강물에 침식되자 후손들이 1858년 5월 청송사가 있던 지금의 자리에 반구정을 옮겨 세웠다. 1998년부터 2002년에 걸쳐 진입로 개설과 전기 공사를 했다.

10여 년 전에야 전기공사를 했다는 것은 이곳이 얼마나 외딴곳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기록대로라면 반구정은 원래 위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옮겨왔든 지금 자리도 명당이다. 햇볕이 잘 들고 남지철교 쪽 낙동강을 굽어볼 수 있는 위치여서 전망도 아주 좋다. 절이 있던 자리라고 하니 이리저리 따져보지 않아도 좋은 위치일 것이다. 어련히 절터를 정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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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정 마루 유리창에 느티나무가 비친다. 알루미늄샷시 유리창 때문에 고풍스러움이 덜하다. / 조재영 기자

 

느티나무는 나이가 60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구정은 마루에 알루미늄샷시 유리창을 해놓아서 고풍스런 맛이 떨어졌다. 하지만 충직한 신하처럼 반구정 앞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낙동강을 배경으로 만들어내는 풍경은 사람을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든다.

지인의 이야기로는 느티나무 아래 반석에 관리인(조방 선생의 후손)이 키우던, 똑똑하고 착한 개가 항상 앉아 있었는데 어떤 몹쓸 사람이 그랬는지, 주인 몰래 그 개를 끌고가버렸다고 한다. 사람이든 미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귀한 것인데 어찌 그리 개 한테나 주인한테나 모진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반구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칠서지방산업단지쪽으로 이어졌다. 작은 모터사이클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많이 헐떡거렸다.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힘들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휴일 마실을 재미있게 다녔으니 조만간 엔진오일을 갈아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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