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표시·교환 수단 등 기본 기능 없어
분산기법 미적용 거래소, 해커 공격 대상

화폐란 교환경제사회에서 상품의 교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일반적 교환수단 내지 일반적 유통수단이라고 정의된다. 화폐는 개개의 가치를 통일적으로 표현하는 재료가 됨으로써 가치표현의 척도로서의 기능을 하고, 화폐를 통해 팔고자 하는 재화와 사고자 하는 재화가 교환되는 교환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지급수단이나 가치보장수단은 화폐의 파생적 기능이다. 이러한 화폐를 위조하거나 변조하는 사람은 형법 제207조에 따라 최대 무기징역형에 처해진다. 현대의 교환경제사회에서 화폐가 갖는 위상이 어떠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예이다.

그런데 요새 화폐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화폐라는 명칭으로 천 가지가 넘는 코인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앞에 '가상'을 붙이고 있지만 버젓이 '화폐'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작년 하반기 600만 원에서 2000만 원을 돌파하기까지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다른 코인들도 상당한 폭으로 상승했다.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기하는 가상화폐의 오름세에 한발 걸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에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블록체인이라는 미래 금융 기술에 대한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같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한창 비트코인이 김치프리미엄을 업고 미국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면서 최대치를 달리고 있던 올해 1월 11일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가상화폐는 화폐로 볼 수 없는 가상증표 또는 징표에 불과하다면서 거래소 폐쇄를 언급했다. 물론 법무부장관의 패기 넘친 말은 당일 엇박자를 낸 기획재정부와 청와대에 의해서 바로 한풀 꺾이긴 했지만 필자는 코인을 화폐로 보기 어렵다는 말에 주목했다. 부처 간의 엇박자로 코인 거래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왔던 것은 정부의 실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본질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누구 마음대로 그 코인들을 화폐라고 부르는가. 이 코인들이 모든 재화, 서비스의 가치를 통일적인 가격으로 표시할 수 있는가. 코인들 그 자체의 가격도 하루에만 수십 퍼센트 널뛰는 상황이라 가치척도로서의 기능은 어림없다. 그럼 교환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어떨까. 이 코인들로 아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아무 식당에 가서 밥값을 계산할 수 있는가. 안된다. 이러한 화폐의 기본적인 기능도 하지 못하는 코인들인데 지급수단이나 가치보장기능은 더 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코인들이 버젓이 화폐라는 명칭을 달고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돈을 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을 산다. 뭔가 역설적이다. 물론 블록체인은 매우 매력적인 기술이다. 소수의 거대 금융자본에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들어갔던 큰 비용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이용자들 한명 한명이 주체가 되어 거래 원장을 관리한다. 모든 거래 내용이 기록되고 그 기록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기 때문에 매우 투명하고 민주적이다. 이제 금융영역에서도 수평적 분권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거래되고 있는 코인들이 블록체인 기술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현재 코인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또 하나의 강점인 탁월한 보안성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고안된 방법으로 코인들을 소유하고 거래하려면 코인을 산 사람들이 전자지갑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가상화폐 거래소는 이 분산 기법을 적용하지 않은 채 중앙집중식 거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해커들은 거래소를 해킹해서 코인들을 빼가는 중이다. 이 역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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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의 미래 가치를 보고 공사채나 주식처럼 코인들을 샀다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에, 매몰비용에 대한 아쉬움에, 온종일 시세판을 들여다보면서 그 등락에 절절맨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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