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병원, 환자 1인당 면적 4.6㎡ '법적 기준에 한참 미달'
주민·유가족 "보호자 앉을 자리도 없어" 증언

"병원이 아니라 처참한 공간이었다." 밀양 세종병원에 환자, 보호자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밀양시와 밀양보건소에 따르면 지난 26일 화재 참사가 일어난 세종병원 17개 병실의 환자 1인당 평균 바닥 면적은 4.6㎡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2월 개정된 의료법 기준인 환자 1인당 면적 6.3㎡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다.

세종병원이 얼마나 좁았길래 성토가 쏟아지는지 지역 주민과 유가족들을 통해 화재 나기 전 병원 내부를 들여다봤다.

가곡동 세종병원 주변에 사는 주민 ㄱ 씨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동문이 나오고 자동문으로 들어가면 1층 오른쪽 원무과에서 4~5명이 접수와 수납을 하고 있다"며 "1층엔 의사진료실 2개(내과, 신경외과), X-레이실 1개, 링거 맞는 공간 1곳, 혈액검사실, 탕비실 등이 있고 뒷문 출입구에 응급실이 있다"고 말했다.

3.jpg
▲ 밀양 가곡동 주민이 사고 하루 전날인 지난 25일 찍은 1층 화재 발화지점 탕비실 모습. /밀양시 가곡동 주민

특히 6층까지 오르내리는 계단과 침상 간 거리가 매우 좁았다는 구체적 증언들이 나왔다. ㄱ 씨는 "계단이 너무 좁아서 두 명밖에 설 수 없었다"고 했다.

한 유족은 세종병원 3층 301호(20인실)에 평소 15명이 넘는 환자가 몰려 있었다고 했다. 희생자 가족 ㄴ 씨는 "침대와 침대가 붙어 있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녔다. 밥을 떠먹여드려야 할 때는 다른 침상에 누워계신 분들에게 죄송할 정도로 가까웠다"며 "병실에 오래 있으면 숨이 막힐 정도였다"고 말했다.

ㄴ 씨는 환자 보호자를 위한 최소한의 기능도 없는 병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간이침대는 고사하고 누울 자리도 없었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침상에 걸터 앉아서 이야기해야 할 수준이었다"며 "딱딱한 의자 하나에 몸을 기댔었는데 그마저도 좁았다. 불편한 환경 때문에 병원을 옮길까 생각했는데 그만 참사를 당하셨다"고 했다.

가곡동 주민 ㄷ 씨도 "최근 시어머니가 2층에 입원했었는데 오른쪽 끝에도 병실이 있고 왼쪽 끝에도 병실이 있었다.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좁고 침대와 침대 사이, 보호자 간병침대도 좁아서 매우 힘들었다"고 기억했다.

화재 당시 3층(중증환자집중치료실)에는 21명이 입원 중이었고 이 중 9명이 숨졌다. 다른 층도 마찬가지였다. 6층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ㄹ 씨는 "화장실에 한 번 가려고 하면 붙어 있는 침대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며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불편해했다. 환자를 위한, 보호자를 위한 공간은 침대뿐이었다"고 밝혔다.

30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현장 병실 내부. 간이침대를 놓지 못할 정도로 침대와 침대 사이 거리가 좁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또 다른 6층 환자 가족 ㅁ 씨도 "어머니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오셨는데 짜증을 많이 내셨다. 누워있는 것도 불편하셨겠지만 침상이 붙어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며 "화장실 너비도 고령 환자가 걸어다니기엔 좁았고, 침대 너비도 덩치가 큰 환자라면 뒤척일 때 상당히 불편할 법했다"고 했다.

2년 전 세종병원에 아버지를 입원시켰던 이모(33) 씨는 "당시에도 보호자를 위한 간이침대 하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2층 6인실에 입원하셨는데 밤이 되면 있을 곳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세종병원은 지난해 2월 개정 이전 법적 기준인 4.3㎡를 겨우 넘길 정도의 바닥 면적만 확보하고 좁은 공간에 많은 병상을 운영했다. 침대는 많지만 정작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2월 개정된 의료법에 따르면 의원이나 병원은 병실 하나당 최대 4개, 요양병원은 최대 6개까지만 병상을 놓을 수 있다. 환자 1인당 6.3㎡ 면적도 확보해야 하고 병상 간 거리도 1.5m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나 세종병원은 개정된 의료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세종병원은 현행법 기준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좁은 병상에 많은 환자를 받았지만 25년 전 허가를 받은 점을 고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법망에 저촉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해왔다. 천재경 밀양보건소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처참했던 입원실이었다. 보건소에서도 별도로 단속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 이전에 허가를 받은 병원이라 하더라도 재난이나 사고 상황에 대비, 환자 수를 조정하고 대피로를 확보하는 등 안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현기 경남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침실 간 간격이 좁았다고 한다면, 통행에 지장을 주니 자연스레 피난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침상 간 이격거리에 대한 마땅한 규제가 없었던 문제점이 있었고, 좁은 공간에 과밀하게 운영하는 병원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