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현장의 참혹함 취재기자 억눌러
일상회복 쉽지 않아 심리치료 필요

밀양은 슬픔에 빠졌다. 이름처럼 따뜻한 곳이지만 '밀양'을 떠올리면 나는 아프다. 세종병원에서 난 불은 39명 목숨을 앗아갔다. 생존자 151명은 다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송전탑 공사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후유증에 화재 참사까지 더해져 밀양의 아픔은 더 각인된다. 불이 난 지난 26일, 종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눈과 귀는 뉴스특보 방송에 박혀 있었다.

재난과 참사 생존자들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쌍용차 파업 때 공권력 진압을 받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가. 악몽은 되살아나 괴롭힌다. 지워지지 않는다. 이번 화재 참사가 난 세종병원에서 탈출한 한 환자는 "눈만 감으면 그때가 떠올라 잘 수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힘들다고 했다. 지난해 지진 피해가 컸던 포항 시민도 바람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재난 현장에서 분투하는 소방관, 경찰들도 고통을 받는다. 소방관들 심리질환 유병률이 일반인보다 4~10배나 높았다. 상황이 심각하니 정부가 나서 트라우마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재난 현장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은 어떨까. 관찰자, 전달자일 뿐인데 그렇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재난 보도는 취재 기간이 긴 만큼 기자가 현장에 오래 머물고 많은 사람을 만난다. 사건을 깊이 파고들어갈수록 기자는 내부인이 된다.

오열과 분노로 가득한 공기는 자연스럽게 기자에게 스며든다. 참혹한 현장의 슬픔과 그 무게는 기자를 누른다. 취재에 몰두하다 그냥 일상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 밀양을 떠올리면 아프듯이 그렇게 불쑥 튀어나온다. 기자는 결과물에 대한 압박도 받는다. 1차는 내부에서 제대로 된 기사를 만들었는지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시청자와 독자들로부터 받는 품평은 더 큰 압박이다. 대표적인 단어가 '기레기'다. 이런 낙인만큼 큰 트라우마가 있을까.

트라우마를 앓는 기자들이 심리치료를 받기는 쉽지 않다. 술 마시며 넋두리 푸는 게 고작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자에게 치료지원도 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취재했던 15개 매체 기자 104명의 심리치료를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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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제언론인센터가 펴낸 <재난과 위기보도>에는 재난 취재와 보도를 할 때 방법과 안전,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할 준칙뿐만 아니라 기자들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저자는 "비극적인 상황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취재·보도야말로 기자들이 하는 일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재난 보도 과정에서 받은 고통을 푸는 방법도 제안했다.

사람이 멸종하지 않는 한 재난과 비극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따뜻한 일만 생겨서 그런 소식만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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