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개 키우는 시골, 분양 쉽지 않아
산에 풀라는 친구 말…"같이 살아야지"

"여기저기 똥 싸 놓으면 치우는 것도 일이여." "우리 집에도 새끼 낳았는데 그냥 준대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 "털 날리고 냄새 나고 한 마리도 힘든데 뭣 하러 또?"

골판지 상자에 담아 장터에 내놓은 우리 집 강아지들을 보고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고 품에 안아 보면서도 정작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큼직한 글씨로 '거저 드립니다. 식구처럼 같이 살 분들께'라고 써 붙여놓은 것을 보고 진짜 공짜냐며 가져갈 듯하다가도 일행 중 하나가 만류하면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할아버지가 가져가겠다고 하면 할머니가 말리고 할머니가 탐을 내면 같이 온 며느리가 말리는 식이었다. 개를 키우면 개한테 매여서 며칠 집 비우기도 힘들다고.

맞는 말이다. 개밥 챙기는 것도 일이다. 사룟값도 만만찮다. 우리 집 개가 두 마리인데 뒷밭에 산돼지가 와서 난장판을 벌여도 짓기만 하고 쫓지는 못한다. 속된 말로 '밥값'도 못한다.

우리 집 '까뭉이'가 일곱 마리나 새끼를 낳았을 때부터 여기저기 강아지 데려갈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도 다들 한두 마리씩 개를 키우고 있었다. 시골에 개 없는 집이 없다.

그래서 5일 장터 두 곳을 사흘거리로 돌면서 팔자에도 없는 '개장수' 노릇을 했는데 공짜로 가져가면 개가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다고 기어이 1만 원짜리를 내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공치는 날도 있었다. 집에까지 데려갔다가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우느냐고 마누라한테 혼났다며 도로 데려온 사람도 있었다. 정말 쉽지가 않았다.

강아지를 '분양'하는 게 시골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지라 밥을 줄 때마다 절대 새끼를 배지 말라고 다짐을 놨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지난여름. 암내가 난 까뭉이 꽁무니를 맴도는 아랫마을 수캐를 내쫓는 걸로는 까뭉이를 지킬 수 없다고 여겨져 마당에 철망을 치고 까뭉이 보호 작전을 폈지만 이미 눈 맞춘 두 녀석이 공동으로 철망 밑으로 구멍을 내고 배를 맞춰버렸었다.

한번은 장터에서 낯이 익게 된 장터 개장수가 자기한테 일당을 주면 개를 다 가져가겠다고 했다. 멀쩡한 사내가 강아지 공짜로 나눠주느라고 하루를 허비하는 꼴이 우스웠나 보다. 순간 흔들렸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보신탕집에 공급되는 개들이 어떻게 사육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도살과정의 참상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장터에 일곱 번 나가서 겨우 일곱 마리를 다 해결하고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해서 집에 오니 두 마리 개가 배고프다고 요란하게 짓는다. 며칠 집을 비워야 하는데 이들을 어쩌나. 개선장군은 졸지에 상심에 젖는다.

산 속에서 크게 꽃 농장을 하는 친구가 떠올라 전화를 했다. 용건을 다 듣지도 않고 친구는 단호하게 충고한다. 산에다 풀어버리란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니 개 붙들고 고생하지 말란다. 단 며칠이라도 절대 자기 농장에서 개를 돌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겨울에 물은 얼지, 추운데 문 열고 나와 사료 주는 것도 귀찮아서 자기네 개도 산에다 풀어놔 버렸다는 것이다.

아, 그래도 그렇지. 쌓인 눈은 녹을 줄 모르고 이 추운 겨울에 아무리 사료를 몇 부대 쏟아 준다 해도 얼어 죽지 않고 얘들이 살 수 있단 말인가. 유기견들의 말로가 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죽거나 자기들끼리 영토다툼 하다가 크게 상처를 입는다지 않는가.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다 포살당한다고 하지 않는가.

전희식.jpg

집을 나서기 전, 두 마리 개가 사이좋게 먹을 수 있도록 양쪽 그릇에 먹이를 많이 담았다. 강추위에도 얼지 않도록 물 대야 밑에 다는 수도 동파방지용 열선을 깔고 콘센트에 전원을 꽂았다. 그래. 같이 살자. 너희 둘을 끝까지 내가 돌보마. 같이 천수를 누리자 건강하고 즐겁게. 개장수 노릇 더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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