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시인 3인 첫 시집

우연히도 문학 담당을 하고 나서 처음 만난 시집 3권이 다 '첫 시집'이다. 모두 경남에서 활동하는 여성 시인의 작품으로 지난달 잇따라 출간됐다. 시집들을 곰곰이 읽다보니 저마다의 문장 속에 시인의 근본적인 태도나 감성이 묻어 나는 말들이 있었다. 그 말들을 시집에서 꺼내 지면에 소개한다.

◇서연우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는다지/공 평하게 끌어당기는 권력이다 일정한 거리,/꼭 필요하다 - 라그랑주 포인트 중에서

창원에 사는 시인 서연우는 2012년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했다. 5년 만에 첫 시집이다. 서연우의 시들은 도시 감성을 가득 담고 있다. 시 제목이자 시집 제목으로 삼은 '라그랑주 포인트'는 조제프 라그랑주(1736~1813)라는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가 위성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인데, 행성과 행성 사이에 서로 간섭하는 중력이 0이 되는 지점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여서 아주 안정적이다. 이는 서연우가 느끼는 도시의 이미지다. 이 '일정한 거리'는 시인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왼쪽부터) <라그랑주 포인트>, <꽃도둑>, <이브의 독백>. /이서후 기자

◇박덕선 시집 <꽃도둑> 

내가 먹은 수천의 생명/나를 먹은 세상의 입들이/천연덕스럽게 모여/ 다정한 밥상 풍경이 된다. - 즐거운 식사 중에서

산청에 사는 시인 박덕선은 2000년 여성문화동인 무크지 <살류쥬>로 등단했다. 그동안 생태운동가로, 풀꽃 연구자로 많은 글을 써 왔기에 '첫 시집'이 새삼스럽다. 박덕선의 시는 생명 감성을 담고 있다. 전원적이라기보다는 성찰적이라고 해야겠다. 시인에게 인간은 태생적으로 폭력적인 존재다. 다른 생명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꽃도둑'이다. 여기서 꽃은 뭇 생명이고, 인간에게 섭취당하면서 사라져버린 그 생명의 온 생애다.

◇한영순 시집 <이브의 독백> 

너희가 늙어 보았느냐/입 속으로 우물거리다 삼켜버렸다/무슨 자랑이 라고 식도를 거슬러온 한마다/너희도 늙어 보아라 - 늙어 보았느냐 중에서

시인 한영순은 2005년 <시와 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마산문인협회와 경남문인협회를 통해 꾸준히 활동하다 이제야 첫 시집을 냈다. 시인은 10년 전부터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라는 마을에 들어가 살고 있다. 일종의 귀촌인 셈인데, 생활 곳곳에서 건져낸 감성이 시집에 가득하다. 그가 70세라는 사실에 놀라 직접 전화를 걸어 나이를 확인했다. 노년의 감성이 놀랍도록 풍성하다. 한 시인에게 함부로 늙었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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