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육청 <민주시민> 4종 경남교육청, 68개교에 보급
민주시민 역량 키우기 초점
체험·참여로 가치 일깨우기 토론하며 생활 속 실천 '눈길'

"다수에 의해 일부가 불편한 상황을 얘기하면 진지충(장난을 안 받아주는 매사 진지한 사람)이 된다.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면 세월호, 성평등, 생명 경시, 촛불 등 수업 중에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시민교육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덧붙이기 겁이 난다. 내가 선 자리, 언제, 어떻게든 따질 틈도 없이 시시각각 맞닥뜨리는 장면과 장면, 바로 그곳에서 시민교육이 시작돼야 한다. 4·16 희생자와 유가족을 떠올리며 아파할 수 있는 마음, 불편한 상황에 대해 상대방을 예민하다 하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려는 노력,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성폭력에 대한 공감, 살면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들을 학생들이 지닐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희망적이다."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대표 집필자 허진만 교사

Q. 사람들 일생에서 인생의 꿈과 행복은 언제 결정되는가? (중학교) ①10대 ②20대 ③30대 ④40대 ⑤50대.

Q. 운동장·교실·도서관에서 공통으로 지켜야 할 규칙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①손 씻기 ②뛰어다니기 ③인사 잘하기 ④조용히 앉기 ⑤오른쪽으로 다니기.

Q.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쓰시오. (초등학교)

정답이 과연 있을까 싶은 각 질문의 정해진 답은 ①, 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이다.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민주시민 교육의 단면이다. '민주'란 무엇이며 '시민'이란 무엇인가? 예로 든 시험 문제에서 알 수 있듯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느끼고 배우지 못하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경기도교육청이 개발한 인정도서인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이하 <민주시민>)를 올해부터 희망 학교에 보급하고 있다. 현재 초·중·고 68개 학교에 5400여 권이 보급됐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014년 3월 창의지성 교과서로 <민주시민> 4종(초등 3~4학년·5~6학년·중학교·고등학교용)을 개발해 활용했다. 교과서는 △민주주의 △선거 △인권 △평화 △미디어 △다문화 △노동 △연대 △정의 △안전을 주제로 동화책·삽화·자료·광고·뉴스·포스터·신문기사·문학 작품 등 인문학 콘텐츠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도록 짜였다.

현장교사가 집필에 참여해 교과가 아닌 10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정답이 없는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 책은 경남도교육청 외에도 서울특별시·광주광역시·충남·충북·전남·전북·강원도·세종특별자치시 교육청이 경기도교육청과 협약을 하고 사용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재 대표 집필자인 경기도 당동초교 장경훈 교사는 "교과서 내용 구성은 시민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주제들로, 핵심적인 가치와 규범들을 총 10개 영역에서 범례적으로 도출해 개념적 이해보다는 체험과 참여로 가치를 습득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5~6학년용 교과서 '사람들은 일을 해요' 주제를 살펴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 사람들이 하는 일, 일과 권리, 일과 휴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서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모멸감을 주제로 '사회적 감정'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아이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아픈 감정의 기억을 찾아내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사회적 존중감을 이해하게 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공감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말 한마디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수업 목표가 된다.

장 교사는 "아이들 역시 노동자가 되기 때문에 학교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노동에 대한 올바른 가치와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노동교육이란 대부분 실과, 사회과, 진로교육을 통해 직업이나 장래희망 형태로만 다루고 있다"며 "<민주시민>은 노동의 가치, 노동의 의미와 권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왜곡된 노동교육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에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중·고등학생용도 같은 주제로 깊이를 달리한다. 고등학생용 교재 대표 집필자인 경기도 삼일상업고 허진만 교사는 "도로에 담배꽁초를 버린다든지, 공연장·도서관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시민의식 실종 사례다. 벌금을 물리거나 제한한다면 이는 강압에 의한 것이지 결코 시민의식을 고양하는 건 아니다"며 "민주시민 교과서의 핵심은 나의 권리만큼이나 타인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는 과정이고, 타인 의견을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토론수업을 중요한 수업의 형태로 상정하고 교과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교재에서 다루는 토론 주제는 현실 문제다. 예를 들면 "연예인 과거 사진 공개,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이다. 주제와 관련한 예시 글에서는 사생활 보호에 대해 걱정하는 학생과 팬들의 알권리가 충족된 사례라고 인식하는 학생으로 나뉘어 있다. 교사는 "만약 자신의 졸업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연예인 졸업 사진 공개에 대한 해당 연예인과 대중의 입장은 각각 어떨까, 차이가 있을까?", "알권리와 사생활 보호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질문을 이어간다.

토론수업이라면 찬반 토론을 떠올리지만 사회는 그렇게 명확하게 찬성과 반대로 나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학생들은 둘 중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의견을 잘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표현하는 경험을 하도록 교과서를 구성했다.

주제·논쟁 중심, 해석 능력 확대, 글쓰기 활동 강화를 통해 민주시민 역량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생활에 실천하도록 한 것이다. 이 교과서에는 개념을 설명하는 글이 없다. 다만, 자료를 실은 의도를 수업 설명서에 담았다.

<민주시민>이 말하는 민주시민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그 역시 정답이 없기에 나부터, 지금, 여기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 교실 안팎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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