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지역을 펴다 쓰다 읽다] (4) 공공과 공생하는 출판
수원 올해 지역도서전 개최 도서관용 구입·보급 '적극'
용인 도서대출 서비스 출판사·서점 '유통 선순환'
대구 출판·인쇄산단 조성 산업성장 '종합적 지원'

창원의 한 동네도서관 검색대 앞에 섰다. 제1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출판대상을 받은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을 입력했다. 창원 내 공공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다. 작은도서관인 사림평생교육센터에 1권 비치되어 있다. 이 책은 지난해 지역에서 움튼 독립출판사들이 모여 창립한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한지연)가 선정한 도서다.

지역출판사가 지역콘텐츠를 바탕으로 펴낸 도서를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이 단순한 사례가 잘 보여준다.

◇수원의 도서관 정책

문화분권과 관련, 경기도 수원시가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는 9월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열고 지역의 다양한 콘텐츠를 나누는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은 한지연이 지난해 5월 온 나라 지역 책들의 한마당이라고 알린 '2017제주한국지역도서전'의 연속이다.

수원시 선경도서관 내 지역작가코너 모습. 수원은 올해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열고 지역의 다양한 콘텐츠를 나누는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수원시청

황풍년(광주 전라도닷컴) 한지연 대표는 "지역출판사가 만든 지역의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전국 어디 도서관이든 온 동네 책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도서전을 여는 목표다"고 설명했다.

수원시는 한지연과 함께 가겠다고 손을 잡았다. 올해 '지역 있다. 책 잇다'라는 주제로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지역을 연결하는 '잇다'와 지역출판이 여기에 있음을 보여줄 계획이다.

고현정 수원시청 도서관정책 담당자는 "현재 시청 담당자, 한지연, 지역문화예술단체, 서점출판인쇄조합 등 90여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곧 사무국과 집행위원회를 꾸린다"며 "지금까지는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에 살아나는 도서관 운동을 해왔다. 큰 행사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것은 올해 도서전이 처음이다"고 설명했다.

수원시는 이번 도서전을 계기로 '수원특별전'을 선경도서관 등에서 열고 수원의 인쇄골목역사와 기록역사, 출판문화역사, 향토자료·문학사를 총 망라해 정리할 계획이다.

또 올해 새롭게 예산을 들여 작은도서관 지역출판물 추천 코너를 운영할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지역출판 우수도서를 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고현정 담당자는 "지방분권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그는 "2010년 민선 5기부터 지방분권이 수원시의 화두였다. 문화 쪽도 마찬가지다. 2010년 이전 도서관이 8개소뿐이었으나 오는 4월에 개소할 도서관을 포함해 총 11개소가 추가 건립됐다"며 "중앙에 집중된 출판, 도서관에서 읽는 책마저도 서울 중심화되는 구조를 탈피하고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던 중 한지연과 연대하게 됐다.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시작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어디서든 걸어서 10분 도서관'이 목표라는 수원시, 공공도서관에서 우리 동네 책, 친구 동네 책을 보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에 입주한 작가가 시민을 대상으로 문화학교를 열고 있다. 김정미 작가는 동화를 쓴다.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

◇동네 서점에서 책 빌리기

당장 도서관에서 지역을 읽을 수 없다면 동네 서점에서 먼저 빌려보면 어떨까?

강수걸 부산 산지니 대표는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2017제주한국지역도서전'에서 지역출판사 도서를 읽어줄 시장을 확보하고 작은도서관이나 도서 희망기관 등을 활용한 유통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예로 용인시에 이어 부산시가 시행하는 '지역서점과 연계한 지역출판사 시민희망 대출제도'를 말했다.

2016년 용인시가 이색 도서대출 서비스를 시작해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동네 서점에서 신간 서적을 빌려주는 '희망도서 바로대출제'였다. 시민은 원하는 책을 서점에서 빌리고, 공공도서관은 이 도서를 구입해 들여놓는다. 공공과 민간의 공생모델인 셈이다.

용인시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도서관 회원 63만여 명이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원하는 책을 서점에서 빌려볼 수 있도록 해 도입 첫해 1만 3000여 명이 5만 5000여 권을 대출했다. 시민의 호응이 아주 컸다. 용인시는 한정된 예산 탓에 서비스를 조기 종료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현재 부산과 안산, 부천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산지니는 지역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지역 서점을 통해 공공도서관·작은도서관으로 순환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지역출판사와 지역 서점 모두 안정적으로 책을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원 한 공공도서관 향토자료실 모습. 지역성을 띤 책이 천편일률적이다. /이미지 기자

◇저작상금을 드려요

이런 제도를 더욱 활성화하려면 지역출판사가 내놓은 도서가 뻔해서는 안 된다.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이어야 한다. 하지만 영세한 독립출판사, 도시 규모보다 출판 규모가 왜소한 지역들, 출판 전문인력이 부족한 현실은 좋은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내놓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지역 출판사를 지원하는 곳,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가 주목받는다.

대구시는 2010년 90여 개 업체, 1000여 명의 출판·인쇄인이 종사하는 산업단지 '대구출판인쇄정보밸리'를 조성했다. 지난해 개소한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는 단지 내에 있으면서 지역 출판·인쇄산업의 성장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위탁해 운영한다.

지난해 진주 경상대출판부가 펴낸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는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의 '2017년 지역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으로 완성된 것이다. 경상대출판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인 담정 김려의 <우해이어보>를 새롭게 해석했다.

또 한 달 전 진주 펄북스가 펴낸 시집 문바우의 <그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고>, 하동 상추쌈출판사가 준비한 <언젠가 새촙던 봄날>도 지난해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에서 저작상금과 인쇄지원금을 지원받은 책이다.

이를 평가한 한 심사위원은 "응모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문화와 관련된 문화콘텐츠들이 많다는 점이다. 지역의 특색을 담지하는 저작들이 눈에 띈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본인은 부산·경남 지역의 지적 특성을 지닌 콘텐츠들이 한편으로는 부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승각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 담당자는 "영남권 중심 우수콘텐츠 지원 사업을 벌인다. 지역문화의 특색을 살린 흥미로운 책이 많아지고 있다"며 "센터는 작가들이 입주해 집필하는 공간을 지원하고 시민 대상 문화학교도 열고 있다. 출판·인쇄는 우리 문화의 핵심이자 콘텐츠산업의 원천이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사례를 독자 즉, 시민을 주어로 놓으면 지역 출판의 미래는 더 많은 이야기로 풍부해질 수 있다.

결국 내가 발을 디딘 이곳의 어제와 오늘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를 위해, 지역문화를 살리고 후대에 물려줄 시민을 위한 우리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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