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회에서 주민자치회 기본법 제정을 위한 주민자치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그간 주민자치회 한계를 극복하는 분기점으로 주목됐다. 주민자치회가 주민관치의 또 다른 도구로 변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지도 주목됐다.

지방분권을 국정운영의 기본방향으로 잡는 현 정부에서 주민자치의 기조와 내용을 구체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다. 지방분권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의제를 중범위 수준 정도로 낮추면서 현실화한다면 주민자치회는 정말로 필요한 조직이다. 하지만, 난방비 정산의 타당성 문제를 두고 아파트 입주민대표자회와 입주자들이 갈등을 빚어 온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주민자치회의 운영과 법적인 지위 문제를 두고선 지속적인 논의 역시 필요하다. 왜냐면, 주민자치회가 지녀야 할 역사적 정당성 혹은 정통성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왜곡되고 굴절되어버린 과거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풀뿌리 기초단위를 흔히들 읍·면·동이라는 소규모 지역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런 관념적 이해는 일방적 행정편의주의 소산일 뿐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 역사가 우리의 근대사에 끼친 결정적 해악은 점령과 침탈만이 아니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토지측량사업을 진행하면서 물밑으론 지역단위의 마을공동체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데 주력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시대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의 맥을 단절하기 위해 마을단위로 구성되고 운영되었던 각종 계나 품앗이를 인위적으로 제거했다. 당시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틀어 놓으려는 의도였다.

주민자치라는 이념과 정신은 현대 지방자치제도의 부산물이 아니다. 과거부터 이어져 왔던 마을공동체의 현대적 명칭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복원된 주민자치 조직들이 관변조직으로 변질되면서 주민자치의 정신은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 불행한 역사에 따라 우리는 주민자치라는 말엔 쉽게 동의하더라도 도대체 내용이 무엇이냐는 의문 역시 가지고 있다. 주민자치라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무엇인지 아리송한 현실을 이제는 바꾸고 자치, 자립, 자주라는 표현이 지닌 의미를 채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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