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방 따로 쓰는 현상 젊은부부 확대
결혼생활, 공유·소통·배려·존중 핵심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지인들이 집들이 명목으로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즐거운 표정으로 집 구경을 하던 남편의 친구들은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두 개의 방과 두 개의 침대를 보고 난 후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무엇보다 벌써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쭈뼛쭈뼛하는 남편의 친구들에게 우리가 각방을 쓰는 이유와 좋은 점을 말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변명이 되는 듯했고 친구들의 우려는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걱정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잠은 반드시 한 침대에서 자라"는 말이 있다. 한 침대를 쓰는 것이 부부간의 친밀도를 높이고 그렇게 같이 자다 보면 웬만한 일은 다 풀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부부가 한 방에서 한 침대를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따라서 각방을 쓰는 것은 곧 부부관계의 해체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섹스리스 부부 대부분이 각방을 쓰며 이혼하기 전 대부분 부부는 각방을 쓴다. 그러나 각방을 쓰는 부부들이 섹스리스이거나 이혼하기 직전의 부부라고 말할 수 없고 앞으로 그런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각방을 쓰는 것이 꼭 부부의 불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0~60대의 부부가 각각의 침대를 쓰거나 각방을 쓰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가고 있고 이러한 생활패턴은 점차 젊은 부부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한 '각방'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40.4%가 '결혼 후에 배우자와 각방을 쓸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해서'가 가장 많았다.

각방을 쓰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는 재충전을 위해서 또는 숙면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아이 때문에 각방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숙면을 위해서가 주요한 이유이지만 각자의 생활과 공간을 존중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남편은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며 일찍 출근한다. 나는 소리에 예민하고 남편보다 늦은 시각에 출근한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가면 늘 잠을 반씩 나눠 자야 한다. 남편이 좀 자고 일어나면 내가 다시 자는 식이다. 우리가 만약 각방을 쓰지 않고 계속 잠을 반씩 자며 한방을 쓰고 있다면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상대에 대한 비난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쯤 우리 사이는 꽤 안 좋아졌을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고 부부관계 또한 만족스럽다.

각방을 쓰는 부부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아마도 친밀감일 것이다. 몸이 멀어져 마음마저 멀어질 것에 대한 우려이다. 그러나 각방은 부부간의 완전한 공간 분리가 아니라 그저 잠만 따로 자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잠을 자기 전까지 대부분의 생활과 공간을 공유하고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표현한다. 우리는 잠을 따로 자면서 서로 소모적인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각방을 쓰면서 최소한의 자기 시간과 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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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방을 권유할 필요도 없지만 더는 각방이 걱정스럽거나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부부가 더 나은 관계와 삶의 질을 선택하는 문제일 뿐이다. 부부의 친밀감과 결혼생활의 만족도는 한방, 한 침대를 함께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공유하고 어떻게 소통하고 얼마나 배려하고 존중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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