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까지 관련 전시도

'내가 중학생 교복을 입고 학생 모자를 쓴 그와 나란히 사진관의 거울 앞에 섰다. "가짜가 진짜 학생보다 더 중학생 같다"면서 한바탕 웃고 말았다.…(중략) 배움의 일념에서 중학생으로 가장, 부산에서 현해탄을 건너는 그 장면이 내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조각가 문신(1923~1995)의 회고록 <돌아본 그 시절>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문신이 16살이었던 1938년, 그는 미술학교에 가려고 일본 밀항을 준비한다. 중학생이면 연락선을 탈 때부터 시모노세키에 닿아 내릴 때까지 아무런 조사가 없다는 친구 서두환의 말을 듣고 교복을 구해 입었다. 그리고 둘은 연락선을 타기 전 기념사진을 찍었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 문신 회고록을 펴냈다. 문신이 1981년 <경남신문>에 연재한 16세 이전의 경험을 묶어 정리했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 문신의 회고록 을 펴내고 이와 관련한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은 전시실 한편에 문신이 직접 사용하던 미술 도구들로 아틀리에를 꾸며놓은 모습. /이미지 기자

회고록을 펼치면 어린 시절 문신이 튀어나온다. 일본 규슈에서 태어나 5살에 아버지를 따라 난생처음으로 마산에 귀향한 기억, 처음 본 조부모의 인상 등을 적어놓았다. 또 화방에서 처음 본 서양풍의 그림(영국 화가 터너의 바다풍경), 화방에 온 손님이 내민 일본 신문 속 피카소의 선악인물 데생을 그려준 일도 기억해냈다.

책에는 1920~1930년대 규슈와 마산의 풍경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산 추산동 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잿빛 시가지, 오동동 깊숙이 있던 소전거리(우시장) 주위 기생집에서 들려오던 가야금 소리, 엄마를 찾아 일본 석탄광을 찾아간 그날까지.

문신은 어린 시절 보고 경험한 환경이 자신의 정신적인 삶의 배경이 되었으며 그 환경을 토대로 작품 세계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문신을 대표하는 '시메트리(대칭)'의 시작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문신(오른쪽)이 1938년 친구 서두환과 찍은 사진.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어머님이 바지락을 캐기에 몰두하듯이 어린 나는 온종일 같이 노는 동무도 없이 혼자 모래 사람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모래 사람을 만들 때에는 양손을 좌우에서 꼭 같이 움직여 물먹은 모래를 그러모아 역시 머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목덜미에서 어깨를 그리고 가슴을, 가슴 위에는 양손바닥을 접시처럼 해서 누르면 두 유방이 동시에 만들어진다. 다음은 복부, 그리고 히프에서 넓적다리, 이렇게 하나의 여인의 부조 나상이 만들어졌다.'

문신은 자신의 조각 작품, 다양한 추상 형체의 기본적인 요소가 이때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고록 발간 작업에 참여한 박효진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학예사는 "아버지의 타고난 성실성과 예술성을 물려받은 문신은 10대에 간판 그리기, 화방운영, 극장 포스터 붙이기 등 여러 일을 했다. 단 한 번도 곁눈질 없는 삶, 오로지 예술을 위한 하나의 길을 걸어왔다"고 설명했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회고록 발간과 함께 문신의 사진과 유화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문신의 16세 이전 경험을 묶어 정리한 회고록 <돌아본 그 시절> 표지.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책에 소개된 여러 회화 작품 가운데 복제유화 20여 점을 내걸었고 문신이 실제로 사용하던 미술 도구와 의자, 선풍기, 전구 등으로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지역 곳곳에 놓인 작품으로 만나던 문신을 그가 직접 쓴 어린 시절 속으로 들어가 다시 만나보자.

전시는 3월 18일까지. 회고록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문의 055-225-7186.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