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당 급여 포함 일괄 지급, 시간 외·야간 수당 못 받아
사업주, 연장근로 강요 태반

# 함안 한 공장 품질관리직에 취업한 30대 ㄱ 씨. 취업 기쁨도 잠시, 노동 강도에 힘들어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시간 노동은 기본, 하루 최대 13시간씩 일해야 했다. 회사는 3개월 인턴 기간에 급여 10%를 감했고, 야근을 시켰지만 초과근로수당을 주지 않았다. 근로계약 당시 '제수당 포함'이라고 써서 포괄임금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ㄱ 씨는 '제수당 포함'이라는 계약 조건 때문에 장시간 야근을 계속해야 했고, 끝내 견디지 못해 그만뒀다.

# 작은 기획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20대 ㄴ 씨. 회사가 영세하다 보니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업무 특성상 야근이 잦았다. 사장이 야간근무를 할 때 버스가 끊겨 택시를 타면 수당을 주겠다고 했지만, 매일 다른 근무시간을 기록하고 차비를 달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ㄴ 씨 역시 근로계약 당시 '제수당 포함'이라고 표기하는 포괄임금 계약을 했다.

민중당 경남도당, 경남청년민중당(준)은 이처럼 청년을 대상으로 한 최저임금 무력화 사례로 포괄임금제를 꼽았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근로 등 시간 외 근로 등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형태다. 두 건은 지난해 경남청년유니온에 접수된 상담 사례다.

이승백 경남청년민중당 준비위원장은 "포괄임금제는 임금 산정이 어려운 직종에 한해서 해야 하는데, 초임을 받는 청년 노동자가 포괄임금제 적용을 받고 피해를 보고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인상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저임금현실화경남운동본부가 22일 오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치졸한 최저임금 꼼수 규탄과 2018년 최저임금노동자 권리 찾기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강지윤 당원도 "포괄임금제로 청년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고, 저임금과 극악의 노동환경에 놓이게 된다. 포괄임금제를 악용해 연장 근로를 강요하는 회사가 많다"며 "청년들 사이에서는 포괄임금제로 계약을 해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노출된 자신을 자조하는 '공짜 야근'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과도한 업무 탓에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져 재충전 없는 만성피로와 무기력함을 넘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3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기업체 노동비용 시범조사에서 상용직 10인 이상 기업체 중 52.8%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중당은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아르바이트가 '용돈 벌이', '유흥을 즐기기 위한 보조수입원', '사회 및 일 경험'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목적으로 바뀌었는데,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곳도 있다. 경남청년유니온은 127개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42.5%가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편의점은 고등학생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시급 4000원을 주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최저임금현실화경남운동본부도 최저임금을 무력화하는 편법·불법과 꼼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지켜나가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경남운동본부는 정의당·민중당·노동당 경남도당, 경남여성단체연합, 경남진보연합, 경남청년유니온, 경남고용복지센터, 창원여성회, 경남비정규직센터, 민주노총 경남본부 등으로 구성됐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지난 8월 최저임금 인상 직후부터 임금 체계 변경 등 불이익 상담 창구(1577-2260)를 운영한 결과, 지금까지 40여 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기존 상여금 일부나 전부를 기본급으로 전환하거나 식대·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해 최저임금 위반을 피하려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경남운동본부는 "대기업 1차 하청업체인 창원의 한 회사에는 여성노동자 2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이 사업장에서 남성 관리자를 앞세워 중년 여성노동자를 면담 형식으로 불러내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남운동본부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각종 불법 편법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현장조사와 근로감독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실태조사·문화제·집회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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