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실태 보고서 첫 발간…전국서 4385명 '강제 동원'
도내 최소 196명 일본 등 끌려가…"피해 사실 구명 중요 자료"

정부가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집 역사 중에서 1940년대 끌려간 '학도병' 조선인 청년 피해 실태 조사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당시 강제 동원된 4385명 중 경남에서도 196명이 끌려간 사실이 확인됐다.

행정안전부 과거사업무지원단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고려대와 공동 수행한 '일제의 조선인 학도지원병 제도 및 동원부대 실태조사 보고서'를 22일 발표했다. 학도병 제도 시행 배경, 동원 규모, 부대 배치 실태, 생존자 회고록, 일본군 부대 명부 등을 기록했다.

행안부는 "지금까지 학도병으로 동원된 조선인은 4385명으로 추정됐을 뿐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다. 이번 보고서는 피해 실태를 종합적으로 구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군이 작성한 '조선인지원병' 출신 지역 분포를 보면 1944년 전국 대상자 3366명 중 3117명이 동원됐다. 일본과 그 외 지역에서 동원 인원까지 합하면 3893명이다. 경남(부산 포함)은 212명 중 196명이 끌려갔다. 학도병이었던 김상현이 확인했다는 수치에는 대상자 6203명 중 4385명이 동원된 것으로 나온다. 다만 해방 직후 총독부 건물 옆을 지나다 소각 중인 문서에서 우연히 확인한 것으로 현재는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 보고서는 "대상 구분 및 수치가 매우 구체적이어서 신뢰도 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매일신보> 1944년 1월 20일 자 3면 '진감하는 학병만세', '환호 속에 떠나는 학병들(사진)' 보도. /행정안전부

<1·20 학병사기>에서 발췌한 '1·20 동지회 명부' 458명 중 배속 지역이 확인된 인원 315명을 보면 경남지역에서 최용덕(남해), 전의진(밀양), 김명규, 김성근(김해) 등 4명이 동원돼 2명씩 중국과 일본으로 배치됐다.

1943년 12월 11일부터 15일까지 당시 부산에 있던 경남도청 무덕전에서 입대를 위한 전형검사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무덕전은 일제강점기 각 지역 관공서에 있었던 건물로 '무도교육'이나 '국민교육'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검사 결과 현역에 적합한 사람들은 현역병 증서를 받고, 이듬해 1월 20일 입영하도록 조치됐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했던 <매일신보> 1944년 1월 17일 자 2면에는 '경남출신 출진학도장행회' 기사가 보도됐다.

일본군은 당시 병역법에 따라 중학교령·사범교육령·실업학교·고등학교령·전문학교령·대학령 등에서 정한 학교의 재학생에게는 26세까지는 징집을 연기했다. 그러나 1937년 시작한 중일전쟁이 봉착상태에 빠지고, 1941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과 태평양전쟁에 돌입하면서 학도병 징집 연기 조치를 고집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1943년 9월 21일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병력 추가 동원을 위해 징병 유예 조치를 중지하도록 했다.

학도병 절반가량은 일본, 30%가량은 중국 전선, 나머지는 한반도 내 잔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에는 고 김준엽 고려대 총장과 고 장준하 선생 등 일본군 병적전시명부에 기재된 탈출 학도병 명단도 나온다.

탈출한 학도병을 '도망(逃亡)'으로 기재한 일본군 명부. /행정안전부

윤상현 경남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보고서에 대해 "학도병 외 전체 규모를 따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을 것"이라며 "정부에서 발간한 첫 보고서로서 의미가 있고 더 두고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행안부도 "위안부 문제와 함께 꽃다운 청년들을 전장에 내몰아 희생시키는 등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에 끼친 강제동원 피해를 사실대로 정확히 밝혀내야 한다"며 "앞으로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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