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머니 뱃속서 머물다 나와
천지·부모·동포·법률 보호 받는 삶

무술년 새해에 독자와 함께 예로부터 전해지는 사자성어 '낙반사유(落盤四乳)'를 화두로 말문을 열고자 한다.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 어머니 뱃속을 거치지 않고 오는 길은 없다. 석가모니는 마야부인 옆구리를 통해서 나왔다고 하는데 결국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나왔다.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가 낳았다고 하는데 역시 어머니 뱃속을 거쳐 나왔다. 노자는 어머니 뱃속에서 80년을 머물렀다가 나왔다고 하지만 역시 같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어머니 뱃속에 자리를 잡아서 열 달을 머물다 세상에 나온다. 그때 어머니 뱃속에 태아가 머무르는 집이 아들 자(子)자에 집궁(宮)자 자궁이고 그 안에 태반이 있다. 이 태반은 어머니 몸과 연결되어 호흡과 영양공급, 각종 노폐물 처리장치를 비롯한 각종 세균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면역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추어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보호막은 없다. 이렇게 완벽한 보호체계 속에서 열 달을 지내면서 사람의 모양을 갖추어서 세상에 나온다. 그게 낙반(落盤)이다. 떨어질 락(落), 태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는 말이다. 그때부터는 호흡도 직접 해야 하고 영양도 직접 입으로 먹어야 하고, 직접 대소변을 누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열 달 된 갓난아기가 이 엄청난 모험 아닌가? 저 어린 생명이 본능적으로 하는 몸짓이 낙반(落盤), 자기를 완벽하게 보호해주던 태반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게 신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보호막을 떨치고 험난한 세상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사유(四乳)는 넉 사(四) 자에 젖 유(乳)자다. 직역하면 네 가지 젖이라는 말인데 태반을 벗어나 세상에 나오면 필요한 자신의 힘으로 네 가지 젖을 찾아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네 가지 젖줄이 '천지' '부모' '동포' '법률' 사은(四恩)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네 가지 보호(케어)를 받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못한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다. 옛 사람들은 '낙반사유가'라고 하는 노래에다가 이런 신비한 비밀을 숨겨놓았다.

과연 우리가 천지 없이 살 수 있는가? 과연 우리가 부모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사농공상 동포의 협력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법률의 안녕질서 없이 삶을 살 수 있고 성현의 가르침 없이 인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수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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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는 나 혼자로 가능하지 않다. 나 하나의 존재에 천지가 관여하고 부모가 바탕하며 동포가 협력하고 국가와 종교가 개입한다. 그게 곧 나다. 나라는 존재가 곧 사회적 산물이고 자연의 결과다. 내 존재가 귀한 이유다. 그런 나는 지금 천지와 친한가? 부모 선조와 얼마나 친한가?

잠시라도 부모와 형제자매의 윤기가 소중함과 사농공상의 이웃과 친함이 있었으면 좋겠고 세상의 안녕질서와 삶의 가치를 떠받치는 성현들의 기도에 감읍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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