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의 대통령이나 이름없는 한 사람의 촌부나 하루 세끼 먹고 잠자고 배설하는 생리현상은 하나도 다를게 없다. 끼니마다 산해진미를 차려 먹는다고 해서 오래 산다거나 배설물에서 구린내가 나지 않게 할 수도 없다. 만인만화(萬人萬和)의 이 지극한 자연권이 계급사회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길이 각각으로 나뉘어 있을 리가 없다. 숟가락 하나 꿰찰리도 없을 터인데 살아 생전에 제 것에만 탐닉하는 무리들이 담벼락에 철조망을 치고 미래를 가둔다. 2001년의 자화상이다.

후퇴할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암흑속에서 한줄기 빛이 꽂혔다. 언론의 민주화 함성이다. 적어도 이 사회가 자멸의 외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각성의 외침이다. 언론의 무한 책임과 역할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재각인되는 순간이다.

세무조사를 해 봤더니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비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 전직 대통령이 너스레를 떨었다. 공개하게 되면 언론의 존립자체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부연설명이 있었다. 말 그대로라면부정과 비리를 감추어 줘서 오늘의 언론을 있게 했다는 역설적 논리가 성립한다. 언론사가 모순의 토대 위에서 비판권능을 독점하고 부를 축적해 왔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렇다면? 이라는 의문이 생긴다. 누구를 위한 존립타령인가 하는 것이다. 언론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정직한 언론인들인가 아니면 언론사를 경영하는 족벌사주들을 지칭한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해서인가. 단언하거니와 탈세와 변태 경영 등으로 대표되는 비리의 원천은 언론사나 종사자들이 아닌 사주측일 것이다. 결국 권력은 사주들을 보호했다는 비난 밖에 들을 것이 없다.

괴테가 그 본질을 직시한다.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그것을 남용하려는 인간뿐이라는 것. 원래 언론은 자유로운 언로를 담보로 한다. 굳이 언론자유를 외칠 필요가 없다. 위정자 쪽에서 보면 입으로 그것을 보장하는 양 떠들어 댄다. 그러나 속은 딴판이다. 제 이익을 위해서 언론을 통제하거나 곡필을 강요한다. 군사독재 시절을 통해 그 속성을 지나칠 만큼 경험해 온 바다.

언론사를 경영해 온 사주쪽 입장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 그들은 권력과 국민을 향해 끊임없이 언론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결과적으로 반대급부를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간접적으로 그들이 누린 정언밀착형 경영 전횡은 전직 대통령의 솔선 증언에서 쉽게 간파된다. 언론 존립이란 허구성이 그 조감도 속에 용해돼 있다.

일부 언론사는 공룡화 된 몸으로 이제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 문민화와 민주화의 사회가 되었건만 예전의 고착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듯 보인다. 국민의 소리가 쓴 소리로 들리는 양 되레 여론에 대한 역공의 모습도 보인다. 야당은 세무조사는 해야 하나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며 언론탄압을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참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정부 각료 중의 강골파 장관이 이같은 분위기에 불을 지핀다. 언론과의 전쟁불사 발언이다. 예전 같으면 그 자체가 언론탄압으로 비쳐졌겠지만 묘하게도 지금의 정서는 그 길을 피해서 간다. 그러나 전쟁이 무언가. 언론이 적군인가. 정부가 정도의 길을 걷고 정치인 및 관료들이 정직하게 생활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다.

언론은 싸워서 때려부술 상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한 경쟁적 동반자다. 손에 움켜쥐려하거나 적대시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작은 예 하나를 든다. 기관장 회의에 언론사 대표들이 약방감초처럼 불려다니고 또 그 부름을 쫓음으로써 마치 자신이 관료의 상석을 차지하기나 한 듯 거드름을 부리는 작태.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그게 언론의 역기능이란 사실을 헤아릴 줄 모른다. 이런 작은 예들이 몇 개 모이면 언론이 바로 권력이란 가당찮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언론개혁은 따라서 언론의 순기능을 회복하는데서 먼저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전제돼야 할 것은 자기 개혁의 중요성이다. 외부의 물리력으로 근육이 찢어져서는 곤란하다. 그것이야말로 언론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관치가 아닌 법치, 피동성이 아닌 능동적 자기 개혁이 맞물릴 때 진정한 자유언론이 뿌리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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