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싱겁고 밍밍한 술? 스타일 차이일 뿐!

[우보라의 곤드레만드레] (2)국산 맥주에 대한 오해
홉 쓴맛·맥아 단맛 줄어든 '페일 라거'스타일에 충실...치킨 등 여러 음식과 조화
외국산 비교 '비싸다'인식 과세표준 달라 생긴 차이...제조원가 신고에 할인도 ×

우보라 기자 paolra@idomin.com 2018년 01월 18일 목요일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했던가요. 한 분야를 집중해 파고들면 자기 나름으로 이치를 깨치게 됩니다. 여기에 재미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요. 경남도민일보 임직원 중에도 재밌게 격물치지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개인 취미겠지만, 이런 일이 개인적인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요. 독자 여러분과 함께 경남도민일보 임직원들이 풀어내는 색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격물치지도 열렬히 환영합니다. 어느 분야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분은 언제든 문정민 기자(minss@idomin.com)에게 연락주십시오.

"국산 맥주는 소주든 뭐든 타줘야 먹을 만하지. 그냥은 너무 밍밍해."

"물 건너온 맥주도 세일을 하는데 국산 맥주는 뭘 믿고 안 해?"

술자리에서 국산 맥주는 안주도 아니면서 곧잘 '씹힌다'. 이유는 주로 맛과 가격, 두 가지다. '수입보다 맛도 없으면서 비싸기까지 하니 안 팔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이번 글은 바로 이 시선들에 대한 이야기다.

국산 맥주는 정말 맛이 없을까. 소비자들은 국산 맥주 맛을 종종 '말 오줌'에 빗댄다. 나는 말 오줌을 맛본 적이 없어서 정말 국산 맥주와 말 오줌 맛이 비슷한지는 모른다. 다만, 맛이 없다는 것을 격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유추할 뿐이다.

국산 맥주 보통명사 격인 하이트와 카스의 맛을 떠올려보자. 사실 조금만 취해도 지금 마시는 것이 하이트인지, 카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둘은 비슷하긴 하다. 구수함은 가볍고, 탄산은 세다. 분명히 밋밋하고 밍밍하다.

하이트와 카스는 페일 라거(Pale lager)다. 페일 라거는 19세기 말 발효 라거 효모(사카로마이세스 칼스베르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 분리에 성공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스타일이다. 맥주 주재료인 홉의 쓴맛과 향, 맥아의 단맛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외국 맥주 중에서는 미국 버드와이저, 네덜란드 하이네켄, 일본 아사히, 필리핀 산미구엘, 덴마크 칼스버그 등이 이에 해당한다.

페일 라거는 가장 대중화된 맥주 스타일인 만큼 여러 음식에도 잘 어울린다. 치킨, 감자튀김, 만두, 수제버거, 피자….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야식의 짝꿍으로 사실 이만한 게 없다. 카스 CF에 출연한 스타 요리장 고든 램지가 "카스는 멋 부리지 않고 쉽게 마실 수 있고 한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칭찬한 것은 자본주의에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심일 것이다. 또 하이트가 지난 2011년 세계 3대 주류 품평회인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받은 것도 자본의 힘이 아니라 정확한 평가를 받은 것일 테다.

그러니까 하이트와 카스는 페일 라거의 밋밋하고 밍밍한 스타일을 잘 살린 맥주라는 이야기다. 밋밋하고 밍밍해야 하는 맥주에게 왜 밋밋하고 밍밍하냐고 물으시면…. 물론 페일 라거 스타일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국산 맥주는 비쌀까. 물론 비싸다. 수입 맥주 가격과 비교하면 말이다. 우리 동네 슈퍼마켓 기준 하이트 맥주 355㎖ 한 캔은 1600원. 대형마트에서 같은 용량 수입 맥주를 6캔 기준 9900원에 팔기도 하니 결코 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국산 맥주 입장에서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다. 가격을 결정하는 주세를 산정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행 주세는 과세표준에 세율을 곱해 산정한다. 국산과 수입 맥주 세율은 72%로 같다.

다른 것은 과세표준이다. 국산 주류는 '출고하는 때의 가격'을 과세표준으로 한다. 대다수 국산 주류업체는 생산과 판매를 함께하기 때문에 출고하는 때 가격에는 판매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 등을 포함한다. 판매관리비, 광고비, 예상 이윤 등 항목이 그것이다. 수입 주류는 '수입 신고를 하는 때의 가격(수입신고가)'을 과세표준으로 하기 때문에 판매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 등을 포함하지 않는다. 수입 신고가는 판매자가 마음대로 신고할 수 있다. 즉, 수입 신고가를 낮춰 신고한다면 주세를 적게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또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맥주는 국세청에 제조원가를 신고해야 해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없지만 수입 맥주는 원가를 신고할 필요가 없어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이는 국산 맥주가 수입 맥주처럼 할인을 할 수 없는 까닭이며 대형 유통채널에서 수입 맥주 파격 할인이 가능한 배경이다.

이 밖에도 국산 맥주가 처한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주류 빈병 보증금 인상이 있었다. 맥주 빈병은 지난해 1월 1일을 기점으로 50원에서 130원으로 올랐다. 국산 맥주업체는 공병을 거둬들인 후 재활용해 사용하지만 수입 맥주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빈병 보증금 인상을 적용받지 않는다. 국산 맥주 가격은 빈병 보증금 인상분만큼 오르지만 수입 맥주는 그렇지 않다. 당연히 수입 맥주의 가격 경쟁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서 수입되는 맥주의 관세가 철폐됐고 오는 7월부터는 유럽연합(EU) 맥주에 무관세가 적용된다.

자, 그렇다면 국산 맥주는 이제 망하는 일만 남은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니다. 국산 맥주의 희망은 어두침침한 조명, 낡은 나무 벽면, 높은 테이블과 의자, 실링 팬(천장 선풍기)이 돌아가는 천장…. 그 속에서 마시던 맥주 한 잔에서 이미 오래전 싹트고 있었다. 수제 맥주가 바로 그것이다.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우보라 기자

    • 우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