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찬성 주민, 반대 주민 몫까지 받아챙겨
대책위 "마을공동재산 '횡령'…경과지 동네마다 갈등"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765㎸ 초고압 송전탑 공사 과정에서 보상금으로 뿌린 '마을공동사업비'가 도리어 마을공동체를 파괴한 실태가 찬반 주민 다툼을 둘러싼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밀양 송전탑 경과지 30개 마을 가운데 피해가 가장 큰 마을인 상동면 고정마을에는 90여 가구가 산다. 마을 한가운데로 송전탑 5기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둘로 쪼개졌다.

◇반대 주민 뺀 채 마을공동사업비 굴려 = 지난 2014년 5월 고정마을 93가구 중 62가구는 대표 5명을 내세워 한전과 합의했고, 마을공동사업비 5억 3400만 원과 개별보상금 3억 5600만 원(가구당 383만 원) 등 8억 9000만 원을 받았다. 주요 합의서에는 △공사를 방해하지 않는다 △반대 주민과 분쟁이 생기면 변호사 비용 한전에서 지급 △마을공동사업비는 개별 분배할 수 없으며 분배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31가구는 송전탑 반대 투쟁을 이어갔다.

2014년 12월 찬성 주민은 반대 주민을 배제한 채 마을공동사업비로 '고정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이 돈은 이후 한 사과밭을 사들여 되팔아 찬성 주민 한 가구당 650만 원씩 나눠 가졌다.

마을공동사업비를 개별 분배할 수 없다는 것을 어긴 것이다. 찬성 주민은 '주택 개량'이라는 명목을 갖다 붙여 돈을 나눠 가졌다.

'돈맛'을 본 찬성 주민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15년 12월에는 반대 주민 31가구가 받지 않은 개별보상금 1억 1800만 원을 한전으로부터 '마을공동사업비'로 받아냈다. 이들은 이 돈으로 2016년 1월 '상동반시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이 돈으로 땅을 사서 밀양시 마을기업 지원금 2억 1000만 원까지 투자받아 지난해 6월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 주민이 반발하면서 공사는 중단됐다.

반대 주민은 지난해 2월 고정새마을회(고정마을)를 상대로 '총회 결의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반대 주민 몫까지 돈을 나눠 가지는 결정을 한 마을총회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가 17일 오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밀양 송전탑 최근 상황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주민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1심 "마을재산으로 귀속되지 않았다" = 이에 대해 창원지법 밀양지원 제1민사부(재판부 최운성 부장판사)는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마을총회와 대표자가 있음에도 별도로 찬성 가구 가운데 대표 5명을 선출한 점', '고정마을 결산서에 마을공동사업비 수입과 지출로 기재돼 있지 않은 점'을 들어 "마을공동사업비가 마을 총유(마을공동)재산으로 귀속됐다고 볼 수 없고, 찬성 주민 사이의 결정을 마을총회 결의로 간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765㎸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마을공동사업비 지급 근거가 된 밀양 송전탑 갈등 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제정한 '지역특별지원 사업비 세대(가구)별 지급 규정'을 보면 '마을대표'를 마을 이장 또는 반장 등을 포함한 5인 이상의 마을대표로 하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고정마을 5인은 한전과 합의를 위한 임시대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또 부북면과 단장면, 산외면 등 다른 모든 송전탑 경과지 마을에서 마을공동사업비를 마을 회계에 포함해 기재했는데, 고정마을에서 이를 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것은 횡령의 주요 근거일 뿐 찬성 주민만의 소유물이라고 할 근거로 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대책위는 이번 판결에 대해 "반대 주민에 대한 한전과 찬성파 주민의 압박, '돈 받고 싶으면 찬성하고, 한전에 협조하고, 안 그러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저열하고 모욕적인 압박을 정당화한 판결"이라며 "한전 등 공기업과의 합의 과정에서 반대 주민을 배제한 찬성 주민의 재산 처분권을 보장함으로써 사업 시행자와 결탁한 찬성 주민의 마을 공동재산 '횡령'을 사실상 합법화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바보'로 만든 마을의 찬반 갈등을 구조화한 판결"이라며 "마을 공유재산 처분에 대한 매우 나쁜 선례를 남김으로써 밀양 송전탑 사안뿐 아니라, 전국 공공사업 간접보상으로 제시된 마을 총유재산 분쟁의 불씨를 댕겼다"고 강조했다.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은 "고정마을은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반대 주민이 합의를 거부하고 버티는 모든 마을에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밀양 송전탑의 가장 큰 상처는 마을을 파괴한 것이다. 시골 어르신에게는 마을과 그 인간관계가 삶 전체이다. 한전은 송전탑을 세웠고 삶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곧 항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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