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시절 설치돼 운영…대공수사권 이관 추진 속 '논란 중심에'

1987년 6월 항쟁을 담은 영화 <1987> 흥행이 이어지면서 영화 속 주요 무대인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처럼 군부독재 시절 설치된 경찰 보안수사대 건물을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현재 일선 경찰서와 별도로 전국에 별관 형태의 보안수사대 43곳을 운영하고 있다.

여영국(정의당) 경남도의원은 '그날'만 생각하면 몸이 오싹해진다고 했다. 여 의원은 1987년 6월 28일 오후 당시 마산 오동동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다.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던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6·29 선언을 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여 의원은 한 여성 시위 참여자가 경찰에 머리끄덩이를 붙잡힌 채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다른 참여자와 함께 항의하다가 연행됐다.

여 의원이 연행되어 간 곳은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다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과 판박이였다. 처음 접해본 공간이었고, 지하실에 있는 조사실로 들어갈 땐 '이제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옛 경남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건물. 현재 이 건물에는 경남지방경찰청 비음로 별관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여 의원은 "시대가 변한 만큼 이제 이런 공간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안수사도 별실이나 안가 같은 이런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 투명한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 의원이 끌려가 조사를 받았던 곳은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옛 경남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건물이었다. 1983년 7월 지어진 이곳은 현재 경남경찰청 별관으로 보안수사1대와 국제범죄수사대, 외사정보계가 사용하고 있다. 2층에는 진술녹화실도 갖추고 있다. 진주시 상대동에도 보안수사2대 건물이 있다.

명분은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조사하고, 방첩 목적을 위해 설치됐다.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노동자, 대학생 등이 이곳으로 연행돼 고문당하고, 조작된 자백서 작성을 강요받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도 시국사범은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 같은 인권침해 전례가 있기 때문에 영화 <1987> 흥행 등을 계기로 폐쇄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건물 폐쇄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경남경찰청 보안수사1대 관계자는 "경찰청 차원에서 아직 방향이 정해진 게 없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와 달리 현재 대공분실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건물은 경남경찰청 별관일 뿐이다. 인근에는 어린이집이 있을 정도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이미 공개된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철문과 높은 담벼락, 건물에 창문 창살은 그대로다.

경남청 홍보실 관계자는 "새 경남경찰청사가 완공되면 보안수사대 등 바깥에 있는 사무실도 모두 청사 내로 이전할 계획"이라며 "다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자치경찰제와 대공수사권 등이 어떻게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경찰이 대공수사를 맡게 되면 시민적, 민주적 통제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 14일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발표하면서 경찰이 안보수사처를 신설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도록 했다.

박미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남지부장은 "흔히 보안사건이라 불리는 공안사건도 그냥 형사사건의 한 종류일 뿐"이라며 "그럼에도 예전 수사를 하는 이들은 마치 본인들이 특별한 수사를 한다는 우월감 같은 게 있었다. 이런 생각들이 반영되면서 은밀한 공간이 만들어지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청와대 개혁방안은 사람, 공간, 시스템 등 모든 것이 합법·상식적으로 들어오라는 게 핵심이다. 이러한 국민 요구에 따르면 될 것"이라며 "공간 활용 여부는 내부적으로 판단할 몫이지만, 대공수사 마인드에 우월감 같은 태도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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