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는 거창하지 않으며 힘든 정의가 아니다. 권력과 자본이라는 힘을 제어하고 약자에게도 기회를 부양해주는 사회적 규범이 적용되고 적어도 출발선이 같으면 공정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더불어 살며 모두에게 동등한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어떤 측면에서는 전혀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 우리 지역에 문제로 대두한 거대 유통기업의 무차별적인 시장 잠식만 해도 그렇다. 소위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중소규모의 나들가게와 슈퍼들은 이들 자본을 무기로 한 거대 유통업체들로 인해 고사 직전에 있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싼 곳을 찾는 소비자들의 성향으로 볼 때 애초에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중소 슈퍼들은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골목상권의 변화를 보면, 우리 사회가 힘이 지배하는 정글보다 더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정글의 최상위를 점하는 맹수들도 배부르면 사냥을 멈춘다. 그렇게 서로 그 숲이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공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골목상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골목마다 있던 그보다 작은 담뱃가게들을 문 닫게 한 것은 중소규모 슈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보다 더 힘센 거대 유통업체들에 의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배부르면 멈추는 법이 없는 정글보다 못한 시장질서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민주주의는 요원해진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상황을 만든 것은 역대 정부들이었다. 그들이 국가와 국민을 잘 건사해야 할 본분과 책임을 다하고 거대자본의 편이 아니라 힘없는 국민의 편을 들었다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달라야 한다. 국민에게 더 많은 권리를 돌려주겠다고 공언했으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 정권의 명분이 선다. 거대 자본의 골목상권 진입 자체를 막을 법과 제도를 확고히 해야 한다. 쥐꼬리만한 지원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지자체의 조례 정도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공정한 출발이 되지 않는 게임을 계속하지 못하게 할 명분은 충분하다. 이미 골목에 들어가 있는 기업형 유통업체들을 철수시키고 규제를 통해 시장을 건전하게 변화시키지 않으면 이 정권의 미래도 없는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