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환경자치시대로] (1) 일방적 정책, 갈등 골만 깊어
밀양 송전탑 등 곳곳 대립 '몸살'…"제대로 된 민관협의기구 필요"

환경정책을 논할 때 개발과 보전은 언제나 양립한다. 그리고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한쪽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화두로 개발을 희망하고 한쪽에서는 난개발, 자연훼손을 들며 보전을 위해 몸부림친다. 특히 일방적인 행정은 갈등을 키우고 시민 목소리를 배제한다. 환경정책을 마련할 때 시민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돼야 한다. 개발과 보전,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민 '동의' 없는 개발사업 = 창원 구산해양관광단지 조성 예정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창원시는 토지 보상 절차에 착수했으나 주민 의견 수렴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구산해양관광단지 관련 주민설명회에서 주민은 '공사 과정에서 주민 불편과 환경문제, 공사 후 관광객에 의한 주민피해 대책 등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토지 매입부터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는 의견을 냈다. 주민들은 창원시가 자신들 의견을 무시, 혹은 방관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물생명시민연대는 "구산면 저도와 구복리, 용호마을 주민이 토지 보상 절차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작 이 지역에 사는 주민은 정보 공유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소외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보호 대상 해양생물 서식 현황과 보전 대책, 주민 요구사항 해결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행정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함안 군북일반산업단지 조성도 주민 반대가 거세다. 경남개발공사는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1429-4번지 일대 유전늪지와 산지·농지 68만 8000㎡ 터에 산단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주민설명회에서 주민들은 "공장밀집 지역에 또다시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 소음·공해 등 주거 환경이 더욱 열악해진다"며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 추진은 주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있다. 거제사곡만지키기대책위원회는 하동 갈사만산업단지와 고성 삼호조선해양특구 등이 거제해양플랜트산단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으나 사업이 중단됐고, 또 국가산단이 필요하다면 앞서 조성한 인근 산단을 활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143만 평 중에 실제로 산업용지로 분양되는 면적은 52만 평에 그친다. 나머지는 주거단지, 상업단지, 배후단지로 구성된다. 정말로 산업단지 52만 평이 필요하면 이미 매립 승인된 인근 터를 활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창원시가 지난 2013년 4월 바다를 매립하면서 시작된 마산해양신도시도 침체한 마산 재도약 발판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걱정거리다. 밀양송전탑 건설은 대표적인 갈등 사례로 꼽힌다. 지난 10여 년간 주민 의견은 무시된 채 국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주민 2명이 숨지고, 경과지 마을공동체는 무너졌다.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 시민·환경운동단체는 정책 추진에 앞서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한 거버넌스나 민·관협의회를 제대로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민·관협의회는 사실상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와 수단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임희자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협의기구가 제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다. 주민대표라는 사람이 이권사업에 개입한 채 협의기구에서 발언권을 행사하거나 전문가로 초빙한 교수에게 막말을 하는 등 논의와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며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정책부서, 개발부서, 환경담당부서 등 기능적으로 나뉜 자치단체 각 부서가 '부서 이기주의'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낙범 경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능별로 행정이 나뉘어있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서 정책 추진을 진행해야 하는데 부서 이기주의가 작용하면서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이나 일본은 하나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5~10년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반면, 우리나라는 1~2년 안에 사업을 진행하려 하면서 사회적 합의가 안 된다. 갈등은 반복되고 사회적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시민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 이익과 무관하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남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토론하고 합의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원식 경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관 주도형, 기관 주도형 정책을 추진하면서 발생하는 '합의' 부재를 꼬집었다. 정 교수는 "지역정책을 집행할 때에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에서 이를 묵과하곤 한다. 다양한 정책 갈등 원인이 있지만 관료적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계획부서, 기획부서, 집행부서 모두가 충분히 사전 조율을 하고 토론을 하고 합의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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