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원망 사지 않는 신뢰 행정 절실
선거 출마자 '치적'보다 '긍휼'명심해야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내용 중에 율기육조(律己六條) 6항이 있다. 칙궁(飭躬: 단정한 몸가짐), 청심(淸心: 깨끗한 마음가짐), 제가(齊家: 집안의 법도), 병객(屛客: 사사로운 손님은 물리치라), 절용(節用: 절약해서 쓰는 것), 낙시(樂施: 은혜를 베풀자)를 말한다.

지난 2일 밀양시 시무식에서 '칙궁'이 강조돼 눈길을 끌었다.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공무원 헌장과 청렴 실천 결의문을 낭독하며 칙궁의 마음가짐으로 시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공무원들이 <목민심서>를 멘토서(書)로 삼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말하면서 농민의 실태, 서리의 부정, 토호의 작폐, 지방 관헌의 윤리적 각성을 촉구한 행정실무 지침서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론만큼 실천하기 쉽지 않은 것 또한 <목민심서> 내용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밀양시장과 창녕군수 자리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이 많다. 특히 창녕군은 3선인 김충식 군수가 출마하지 않으면서 예비후보자가 12명이나 뛰고 있다. 밀양시는 박일호 현 시장이 재선 의사를 밝히는 등 4~5명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시장과 군수 자리를 노리는 사람, 이미 시장과 군수가 된 사람들에게 항상 아쉬운 점이 있다.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단체장이 된 이후에는 보여주기식 치적에 더 비중을 두는 경우가 잦다. 여기서 치적은 양적 성과를 뜻한다. 취업자를 몇 명 더 늘렸고, 수상을 많이 해서 재정 인센티브를 확대했고, 인구를 증가시키고자 산업단지를 몇 개 늘리고 기업을 몇 개 유치했으며, 국비 사업을 많이 따냈다는 자료들을 쏟아낸다. 국비 사업의 경우 지자체가 50%까지 매칭해야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많은데도 말이다.

물론 이런 사업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단체장들이 가장 간과하는 부분은 지역민들과 갈등이다. 진정한 목민관은 '지역민들에게 원망을 사지 않는 행정가'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단체장은 미래 성장 사업을 추진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갈등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십상이다. 아무 걸림돌 없이 정한 목표대로 사업을 이뤄내야 주민이 행복해지고 인구가 늘며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포장한다. 지역 곳곳에서 소소한 갈등은 일상다반사인데, 이런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지 않은 채 미래 발전 카드만 쥐고 법대로 밀어붙이는 게 과연 옳은 행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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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힌 갈등은 고름이 되고 나중엔 대수술을 해야 할 지경에 처할 수 있다. 대수술이 지역 발전 역행 요소로 작용할 것에 대비할 줄 아는 사람이 시장과 군수가 되기를 바란다.

칙궁은 단정한 몸가짐을 한, 행동이 청렴한 공무원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정신이 단정하고, 사고(思考)가 청렴하며, 지역민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것 또한 칙궁이다. 공무원의 '칙궁'은 주민의 '신뢰'가 있어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치적과 사업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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