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동네슈퍼] (하)출발점부터 다른 현실
SSM과 달리 도매업체 등 1∼2단계 더 거치는 탓 판매가↑
대기업 진출 방치한 채 동네슈퍼 지원 '밑빠진 독 물 붓기'

"우리가 느끼기엔 괴물 같습니다."

창원의 한 '이마트 에브리데이(everyday)'로부터 300m 떨어진 곳에서 동네슈퍼를 운영하는 한 상인의 말이다.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신세계 계열 SSM(기업형슈퍼마켓)이다.

소비자가 유통점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격'이다. 그러나 동네슈퍼와 대기업 유통점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출발선이란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들여오는 입고 가격이다.

◇유통구조 달라 경쟁 자체 불가 = 최근 동네슈퍼 중 '전단 행사'를 하는 곳이 늘었다. 일부 소비자는 "이렇게 판매해도 이윤이 남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동네슈퍼의 결정은 그보다 절박했다.

동네슈퍼는 전단 행사를 할수록 어려워지는 구조다. 먼저 공간이 부족하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품은 수요가 많다. 이 때문에 물품을 넉넉히 준비해야 하는데 작은 규모 점포들은 별도 물류 공간이 없다. 별도 공간을 만들려면 기존 제품을 빼거나 행사 제품을 매일 채워넣는 수밖에 없다.

이재희 경남나들가게협회장이 동네슈퍼와 대기업 유통점의 유통과정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김해수 기자

둘째는 전단 행사 제품들은 대부분 이익률이 매우 낮다. 창원 의창구에서 동네슈퍼를 운영하는 유남구(가명) 씨 예를 들어보자. 지난주 정상가로 한 상자에 2200원짜리 과자를 전단 행사 때 1600원에 팔았다. 이 과자의 입고 가격은 1400원이다. 물류비용, 전기료,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마이너스다.

남구 씨처럼 동네슈퍼들이 손해를 감수하고도 전단 행사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동네슈퍼는 비싸다'는 선입견에 눈길도 주지 않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동네슈퍼를 정상적으로 운영해서는 대기업 유통업체와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유통구조에 있다.

동네슈퍼 물건은 제조공장에서 유통 대리점, 도매업체를 거쳐 입고된다. 그러나 대형 유통매장 물건은 제조업체에서 대리점을 거쳐 바로 매장에 진열된다.

최근 논란을 낳은 이마트 노브랜드처럼 기업 자체 상품 PB·PL 제품은 제조공장에서 포장지만 바꿔 바로 매장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유통구조가 단순하니 중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줄어 매장 입고 가격이 낮다.

반면 동네슈퍼는 대기업 유통점과 비교해 1~2단계를 더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매장에 들어오는 가격부터 '게임 오버'다.

◇편의점 역전, 대기업 규제 살길 = 2017년 도내 편의점 수가 동네슈퍼 수를 뛰어넘었다. 동네슈퍼 운영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어떻게 하면 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

경남지역 동네슈퍼는 2017년 12월 기준 3185개다. 2015년 6월 2036개이던 슈퍼는 2016년 12월 기준 3416개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1년 사이에 200개가 넘는 슈퍼가 문을 닫았다. 동네슈퍼가 가장 많은 창원지역도 마찬가지다. 2015년 6월 691개였던 슈퍼는 2016년 12월 1180개까지 늘었으나 2017년 12월 현재는 1089개로 약 100개가 사라졌다.

반면 도내 편의점은 2017년 12월 기준 3266곳으로 동네슈퍼 숫자를 넘어섰다. 2015년 6월 1444개에 불과했으나 2016년 말 3000개에 육박했다. 창원지역 편의점도 2015년 6월 422개였으나 매년 200곳 이상 증가해 2017년 12월 현재는 961개다.

09.jpg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고자 2010년부터 2017년까지 1000억 원 가까이 들여 '나들가게' 정책을 시행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지난 2014년부터 2017년 7월까지 경남지역 나들가게 폐업·취소율은 26.1%이었다. 경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같은 기간 전국 나들가게 폐업·취소 점포는 총 3172개로 폐업·취소율이 28.2%에 달했다.

현재 불평등한 유통구조와 무분별한 대기업 유통점 진출을 방치한 채 동네슈퍼를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다.

이재희 경남나들가게협회장은 "가장 중요한 핵심은 대기업 자본의 규제와 제한이 바탕이 돼야 동네슈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네슈퍼의 몰락은 대규모 실업과 지역민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져 사회 구성원 모두의 부담이 될 것"이라며 "또 편의점부터 SSM, 대형마트, 백화점 등 모든 유통업체를 재벌이 독점하게 되면 소비자 권익이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를 막으려면 상인들도 매장 관리와 마케팅, 조직화 등 노력을 해야겠으나 대기업 유통점 개점 규제, 영업 규제, 허가 제한 등이 절실하다"며 "특히 창원은 인구와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스타필드처럼 대규모 유통점 출점은 더더욱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끝>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