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중요시하는 인물로 묘사…실제론 마산교도소서 가혹행위 주도해

흥행 가도를 달리는 영화 <1987>을 보고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87년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속 '안 계장' 때문이다. 안 계장은 전두환 정권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조작·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을 수감 중인 이부영 해직기자에게 전한다. 안 계장은 영화에서 원칙을 중요시하는 인물로 비치지만, 실제로는 교도소에서 수감자에게 가혹행위를 한 장본인이다.

안 계장의 실제 모델은 1987년 당시 영등포교도소 안유 전 보안계장이다. 그는 1990년 마산교도소 보안과장으로 재직했다. 당시 마산교도소에서 시국사범으로 수감됐던 이들은 '악몽'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영화 속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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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공식 포스터.

김성대 민주노총 경남본부 정책기획국장은 당시 노동운동을 하다 수감돼 마산교도소에서 '비녀꽂기'를 당했다. 비녀꽂기는 묶은 손발을 뒤로 당겨 몸통을 휘게 하는 고문이다. 김 국장은 지금도 발목에 수갑 자국이 있다고 했다. 김 국장은 영화를 보고 박종철 고문치사부터 이한열 열사 장례식 등 기억 속 장면에 먹먹했다. 영화 속 안 계장이 안유라는 것을 바로 알지는 못했다. 며칠 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치가 떨렸다.

김 국장은 "안 과장이 가혹행위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당했던 사람들은 모두 치를 떨 것"이라고 했다. 이어 "팔과 다리를 묶어서 뒤에서 쭉 당기면 허리가 활처럼 휘는데, 누군가 밟는지 모르게 모포를 덮고 군홧발로 무참히 밟았었다"며 "영화 속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마산교도소 내 폭행 사건은 1990년 7월 29일 자 <한겨레>에 '비녀꽂기 교도관에 인권유린 재갈 물려'라는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한겨레>는 사건 전말과 함께 "마산교도소 교도관과 교도대원들이 수감 중인 시국관련 재소자 34명이 교도관의 일반재소자 폭행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집단폭행한 사건은 수감자 가족들이 교도소장을 비롯 안유 보안과장과 폭력교도관을 고소하기로 하는 한편 대한변호사회 쪽에 진상조사단 파견을 요청하는 데까지 번지고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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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신문 1990년 7월 29일 자에 실린 마산교도소 가혹행위 보도./한겨레

창원대 재학 당시 시위를 하다 구속된 강보순(53) 씨는 당시 안 보안과장에게 항의를 했다가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 일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형량이 3개월 늘어 1992년 5월에야 풀려났다. 강 씨는 "안 전 계장이 1987년 했던 역할은 인정한다"면서도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중적인 모습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근 <1987> 흥행과 함께 등장인물인 안 계장을 '의인'으로 미화하고, 훈장을 주자는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동운동을 하다 1990년 마산교도소에 수감됐던 여영국 정의당 경남도의원은 "훈장을 주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고, 성명현 경남진보연합 정책위원장은 "명암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국가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려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가 된 강용주 진실의 힘 재단 이사는 최근 공개적으로 <1987> 보지 않겠다며, 보이콧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2년 대구교도소 수감 당시 안유 보안과장으로부터 징벌방 수용, 전향 강요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 계장이 마산교도소 보안과장으로 재직 당시 가혹행위 사건은 노동운동 역사를 수집·정리한 '노동자 역사 한내'에 당시 상황과 함께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는 <내 사랑 마창노련>과 <마창노련신문> 등을 참조해 작성됐다.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고 5월 전후로 수많은 노동자가 철창 안에 갇히거나 수배돼 거리를 떠돌았다. 당시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가 임금단체협상 투쟁을 통해 연대하는 것을 막으려 했고, 전노협과 지방노동조합협의회 연대조직을 깨려 했다. 마산에서는 총파업 투쟁으로 한 달 동안 170여 명이 구속됐다. 철창 속에서도 투쟁 조직과 실천이 이어졌다. 7월 마산교도소 안에서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새로 부임한 안유 보안과장은 가스총을 옆구리에 찬 채 수시로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고, 수감자를 조사한다며 한쪽 다리를 못 쓸 정도로 두들겨 패기도 했다. 폭행 사실이 알려지자 재소자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자 안 보안과장은 수감자들을 잔디밭으로 끌어내 한 사람 앞에 3~4명 교도관이 달라붙어 속칭 '비녀꽂기', '통닭구이' 고문을 했다."

안 전 계장은 지난 6일 <경향신문> 보도에서 "전 의인이 아닙니다. 대학생들은 저를 가리켜 '전두환의 사냥개'라고 했어요. 학생 수형자들은 제 얼굴에 짬밥을 뿌리기도 했죠. 그때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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