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출판, 지역을 펴다 쓰다 읽다] (2) 진주그림책연구회 도란
2015년 도서관 모인 엄마들
그림책 나눔 이어 출간 도전
'유등 유래·역사' 주제 선택
지역출판사 '펄북스' 협업
2쇄 인쇄·애니메이션 제작
삶 터전·의무 담은 이야기
'좋은 콘텐츠' 방향 일깨워

'좋은 콘텐츠'란 무엇일까. 지역 출판물에 한정하면 지역의 이야기를, 지역민이 쓰고, 지역 출판사가 펴내는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물이 '좋은 콘텐츠'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수요자인 독자가 출판 과정에 참여하여 의견을 전하고, 그것이 결과물에 적용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러한 가정에 꼭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바로 진주그림책연구회 '도란'에서 지난 2016년 펴낸 그림책 <유등 남강에 흐르는 빛>이다.

"저희도 알아요!" 진주그림책연구회 '도란' 회장인 양미선 씨가 반갑게 대답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다. 쉽고 명확하게 쓰인 글과 상황을 잘 전달하는 그림이 한데 어울린 그림책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콘텐츠다. 제주그림책연구회는 그림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은 들었을 이름이다. 10년 넘게 제주에서 그림책을 펴내는 이들은 지난 2004년 한글 자음 14자를 선택해 제주지역의 자연·문화를 녹인 그림책 <제주 가나다>를 펴내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과 소통하며 '제주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시도였다. 지금까지도 이들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양 씨도 그림책 소비자로서 제주그림책연구회 활동을 모를 리가 없다. 더욱이 그들처럼 한 권의 그림책을 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다.

왼쪽부터 진주그림책연구회 '도란' 회원 윤선희 씨, 회장 양미선 씨, 마하어린이도서관 사서 강임화 씨가 그림책 <유등 남강에 흐르는 빛>을 펼쳐보이고 있다. /최환석 기자

'도란'은 지난 2015년 7월 진주 마하어린이도서관에 모인 엄마 15명으로 구성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활동을 벌이다 아예 책을 내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지은 그림책은 진주 유등의 유래를 담았다. 지역 이야기가 중심이다.

"지역 대표 독서 프로그램 사업에 선정된 것이 그림책을 펴낸 계기입니다. 진주 하면 남강, 그리고 유등이 연상되는데 정작 진주에서 태어나 살아온 저 자신도 유등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그렇다면 유등의 유래와 역사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 싶었고요."

도란 회원인 윤선희 씨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남편 만나서 진주로 왔어요. 그림책 작업을 벌이면서 내가 사는 공간을 깊게 이해하게 됐어요. 아마 그림책을 펴내지 않았다면 진주가 어떤 도시인지, 어떤 역사를 품었는지 모르고 살았겠죠."

무턱대고 시작한 작업은 주위의 도움이 있었기에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림책을 만드는 오치근 작가가 지도하고, 지역 출판사 펄북스가 의기투합했다. 실제 독자인 아이들에게 중간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청취한 의견을 결과물에 녹였다.

"원화 등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한 상황에서 출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다 가까이 펄북스가 있다는 걸 알고는 여태훈 대표님을 찾았어요. 지역 이야기를 책에 담아내고자 하는 출판사가 진주에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출판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니까 거절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잖아요. 펄북스에서 불을 지펴 주셨죠."

지역의 어른들이 힘을 합쳐 펴낸 그림책은 2쇄를 찍었다. 파급력이 크지는 않다며 자중하지만, 여러 지역 도서관에서 관심을 보여 책을 비치했다. 학교에서는 책 놀이 수업 재료로 쓰기도 했다. 그림책을 소재로 10분짜리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 이어졌다.

진주그림책연구회 '도란'에서 펴낸 그림책 <유등 남강에 흐르는 빛>. /최환석 기자

처음으로 돌아와, 이들에게 지역 이야기에 관심을 둔 까닭을 물었을 때다. 이들은 입을 모아 "우리가 이곳에 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보다 멋진 대답이 있을까 싶다.

"지역이라는 이름이 앞에 붙으면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잖아요. 지역이라는 말을 빼면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상인데 말이죠. 이야기보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이 어른이 해야 하는 몫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어른이라면 다음 세대에 우리 일상을 전하는 일이 의무라는 말이죠. 여태훈 대표님은 진주문고와 펄북스를 운영하고, 우리는 도서관 중심으로 모여 그림책을 나누는 일상이 함께 그림책으로 이어진 거죠.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은 지금까지 해왔고,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몫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 출판에 바라는 점이나,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벌이는 이야기 짓는 과정이 구름 빵처럼 뭉실뭉실 더 많아지길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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