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신분·나이 따른 호칭·반말 여전
존중·배려 담아 부르는 문화 확산해야

식당에서 음식 시키는데 멀리 있는 그분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대략 난감할 때 있으셨죠? 사장님, 이모, 삼촌, 언니, 아줌마, 어머님, 아버님, 아가씨. 지역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세월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예전엔 나이가 조금 어려보이는 여성일 경우 무조건 아가씨라 부를 때도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순이 삼촌'의 경우처럼 모두 삼촌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제일 무난한 호칭은 사장님입니다. 그런데 한 가게에 사장님이 여러 명 있을 리는 없습니다. 적당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그냥 '저기요, 여기요'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 오랜만에 사람 만났을 때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생각나는데 직급이 생각나지 않아 어떤 호칭을 사용해야 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실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면 그때부터 상대방 부르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연배가 나보다 어린 경우는 반말을 해야 할까, 존댓말을 해야 할까, 불필요한 고민도 하게 됩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해집니다. 정치인들을 부를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박사님, 전 의원님, 대표님, 전 대표님, 의장님, 전 의장님, 소장님 같은 다양한 호칭이 동원됩니다. 적당한 호칭을 선택하지 못해 막 섞어서 부를 때도 있습니다. 토론을 진행하는 사회자가 호칭 정리를 해 주는데도 쉽지는 않습니다. 법적으로 전 대통령이라는 존칭이 박탈되어 그냥 아무개 씨라 불러야 하는데도 여전히 전 대통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호칭 문화는 변하지 않습니다. 대략 난감,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무조건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어찌 보면 윗사람을 높여 부르는 우리네 호칭 문화는 존중해야 할 미풍양속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잉이 문제입니다. 아랫사람을 낮추어 대하는 하대 과잉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안을 가지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아요.' '같은 어른인데 함부로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얼마 전 스물다섯 살 딸이 아빠에게 보내온 문자입니다. 버스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이래라저래라 불친절하게 반말을 하더란 하소연입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면 무조건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런 반말 문화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수직적 관계 문화가 만들어낸 문제점 중 하나로 보입니다. "세상 참 많이도 변했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합니다. 건물은 높아지고, 도로는 넓어지고, 관계망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칭과 반말 문화는 여전하기만 합니다. 권력과 신분, 나이가 '계급장'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학교는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이젠 아이들에게도 대부분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교직원 사이에도 존중과 배려의 '호칭 민주화' 문화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직장 문화가 나름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단계별로 복잡하기만 했던 직책 대신 '님' 자로 통일해서 부르는 사내 문화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 많은 사람이 마음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려는 '작심'을 하게 됩니다. '금연을 실천해야지', '건강을 잘 챙겨야지', '돈을 많이 벌어야지'하면서 나름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계획 중에 '아랫사람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해야지'라는 실천 계획이 하나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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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사장은 영원한 사장', '한번 교장은 영원한 교장'이라는 낡은 생각도 세상 변화에 맞춰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신분과 지위의 차이, 성별의 차이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호칭의 발견'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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