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서 짓는 농사 희망될 수 있나
생명 가꾸는 삶의 소중함 깨달아

한 해를 뒤돌아보니 '일 년이라는 시간 안에 어떻게 이 이야기들이 다 담겼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사람마다 추억 주머니가 있다면, 아마 내 추억 주머니는 아무리 담아도 자꾸 늘어나는 아주 질긴 가죽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내 추억 주머니 속에는 씨 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싹을 기다렸던 봄이 있고, 작물을 들여다보면서 생명을 대하는 마음을 배웠던 여름이 있고, 가뭄에 맺힌 작은 열매들이 가슴 뛰게 고마웠던 가을이 있고, 그 시간을 함께한 식구들과 이웃들이 있다. 이제 밭도 농부도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한 해 내내 땀 흘리며 일하던 밭을 지나가면서 인사를 한다. '온 생명을 다 품어 살리는 땅아, 서툰 농부랑 작물을 기르느라 애썼다. 정말 고맙다.'

스무 살부터 농사를 지어 산골 농부가 된 지 네 해가 지났으니, 이제 농부 나이로 네 살이 된 셈이다. 농부가 되고부터 어쩐지 한 해 한 해가 더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새해마다 한 해 목표를 세우는데 2017년 목표는 '마음껏 행복하자!' 딱 한 가지였다. 내가 행복하면 적어도 대한민국에 행복한 이십 대 한 명은 있다는 거니까,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희망이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힘겨운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농부로 살면서 느끼는 행복을 나누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행복하고 싶었지만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해였다. 산골 마을에서 네 시간 버스를 타고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서울 광화문으로, 백남기 농부님을 지키기 위해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예슬아, 농부들이 언제쯤 아스팔트 농사 안 짓고 마음 편하게 살겠노. 너희가 농사짓고 살 세상은 흙 농사만 지어도 되게 해 줘야 할 낀데…." 이웃 마을에 사는 선배 농부님들이 깊은 한숨을 쉬며 내게 하셨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2017년도는 유난히 쓸쓸한 날이 많았다. 긴 가뭄에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무슨 까닭인지 병도 심했다. 쓸 만한 것 하나 없이 병든 고추를 보면서, 날마다 쓰러지는 생강을 보면서, 땅도 세상도 죽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농사지으며 사는 것이 내가 지킬 수 있는 '희망'이라 믿었다. 그래서 누가 무어라 해도 청년 농부로 사는 것이 행복하고 당당했다. 하지만, 요즘 부쩍 내가 너무 약하고 작게 느껴졌다. '나한테 무언가를 지켜가는 힘이 있을까? 산골에서 묵묵히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할 때, 나를 어릴 때부터 지켜보아 주신 선생님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예슬아, 선생님은 앞으로 너처럼 살아가는 청년 농부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생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배우며 삶을 가꾸어가는 농부는 참으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야. 선생님이 너처럼 젊었을 때 이런 진리를 깨달았다면 나도 농부가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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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청년 농부로 산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구나, 많이 흔들렸구나. 외로웠구나.' 뒤늦게 알아챈 내 마음을 다독였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다시 농부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고맙다. 나는 빈 들녘에 서서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린다, 설레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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