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구속·조롱거리 된 전임 대통령들
수많은 언론통제 무리수 결국 '부메랑'

해직 PD가 MBC의 사장으로, 해직 기자가 MBC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로 되돌아오는 것은 공영방송의 대변화를 상징한다. 한때, 정치권력의 낙하산 사장하에 몰락한 공영방송 MBC, KBS는 권력을 견제,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권력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의 감시, 견제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 대통령들은 역설적으로 한 사람은 파면돼 구속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고 또 한 사람은 "다스는 누구 거냐?"라는 국민적 의혹과 조롱거리로 전락한 신세가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느 사회에서나 권력은 타락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도 부족해서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에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특히 공영방송은 권력으로부터 독립, 감시견 역할을 하라고 국민이 수신료까지 납부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통제전략은 성공했다. 정치권력의 지시를 실행하는 데 공영방송은 앞장섰고 결국은 다양한 언론통제전략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지나간 시간을 복구하며 언론을 무력화시킨 언론통제전략은 어떤 것들인가를 살펴보게 됐다.

본래 언론통제전략은 언론선진국이라는 영·미에서 시작됐다. 특히 월남전, 포클랜드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걸프 전쟁 등 주로 전쟁상황에서 언론통제전략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디바이드 앤드 룰 (Divide and Rule·분할통치)' 지배방식처럼 우호적 언론과 비우호적 언론에 대해 이런 방식을 적용했다. 전선(War front) 취재 막기, 공보관 통제하에 움직이기, 부상당한 병사 인터뷰 금지, 풀 기자 활용 등 주로 전쟁 취재라는 특수상황에서 언론통제전략은 풀 가동됐다. 영상자료는 국방성이나 군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사용하기 등 철저하게 국익차원에서 보도하도록 언론통제전략은 구성됐다.

그러나 매체 수가 늘어나고 SNS로 전 세계가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가 연결되는 등 취재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자 미국은 '임베디드(Embedded)' 취재, 즉 취재기자를 선발하여 군 내부에 편입시켜 전쟁수행 전 과정에 동참시키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역시 일종의 언론통제전략으로 자국에 불리한 보도를 막고 전쟁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전략으로 활용했다. 언론통제전략은 세계적으로 이미 일반화된 상황이지만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작동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은 노무현 정부시절 언론 자유도가 세계 30위권대(국경 없는 기자회 기준)로 선진국 수준이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70위권대로 곤두박질쳤다.

전시에서나 가동할법한 언론통제전략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여 언론을 통제한 결과였다. 불과 9년여의 기간이었지만 언론자유도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하며 언론통제전략이 무모하게 가동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피기도 전에 이렇게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취재기자로 아프가니스탄 전쟁(1989년), 걸프전쟁(1991년) 등을 취재하며 경험한 언론통제전략을 국내에서 언론학자로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목격, 연구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가진 것을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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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시도된 언론통제전략은 대략 살펴봐도 무려 17가지나 된다. 주요내용을 정리하면, 주요뉴스 보도 안 하기, 뉴스 물타기, 권력이 뉴스 경중 판단하기, 뉴스심의기관의 무력화, 댓글부대 동원, 이언제언(以言制言), 저항언론인 해고하기, 공영방송 이사진 내 편으로 구성하기, 소송으로 겁주기, 당근과 향응전략 등. 연구결과 결론은 "언론을 망치는 정치지도자는 자신을 망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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