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콜(Recall) 지방선거] (3) 자치단체장 현주소
도·함안·고성 등 3곳 대행 체제…의원 재보선 연례행사
선심성 공약·낭비성 예산 집행도 '분권 걸림돌'로 작용

'대통령은 원칙을 말하지만, 시장은 쓰레기를 줍는다.'

미국 사회학자 벤자민 바버가 쓴 책 <뜨는 도시, 지는 국가>에서 나온 이 말은 자치분권 필요성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국가는 큰 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시민 삶 가까이에서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세운다는 의미다.

그런데 국가 공공기관을 총칭해 중앙정부라고 부르면서 지역 자치기관은 왜 지방정부라고 부르지 않을까? 분권 전문가들은 지방정부를 깎아내리는 지방자치단체 명칭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분권형 개헌에 반영할 방침이다. 그러나 지방이라는 용어 자체가 변방·종속·비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지적을 고려하면 지방정부라는 표현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인 정책보다는 주민생활에 맞는 다양한 정책을 펴는 지방정부 역할이 커졌다.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시책이 달라진다. 이런 시책에 따라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지역대표를 뽑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해 4월 민주당과 정의당 관계자들이 도의회 앞에서 당시 홍준표 도지사 중도사퇴와 관련해 정당연설회를 하는 모습.

◇불신의 벽 깨트려야 = 분권 반대 주장 가운데 방만한 재정 운영을 자주 든다. 지방정부 권한을 확대하면 단체장들의 치적쌓기용 사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지방정부에서 선심용 공약이나 낭비성 예산집행 사례가 심심찮게 드러나면서 이런 불신을 자초한 면이 있다.

하동군 갈사산단 사태가 대표적이다. 갈사만 개발사업은 10여 년간 하동지역 국회의원·군수 등 공직선거 출마자들의 단골 공약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대우조선해양과 분양대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패소해 900억 원에 달하는 채무를 떠안게 됐다. 재정자립도 7%에 불과한 군에서 사상 초유의 재정 부담 사태에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 사천·남해·하동지역위원회는 "하동군의 전형적인 밀실행정과 일부 부도덕한 공직자, 감시 기능을 상실해버린 의회의 무능이 낳은 예견된 산물이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욱 개탄할 일"이라며 "앞으로 닥칠 모든 피해는 오로지 군민 몫"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례는 분권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에 분권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지역 기득권 구조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당 독점과 권위주의, 토호·기득권 체제를 깨트려야 높은 수준의 분권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뇌물수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자 법원으로 들어서는 차정섭 함안군수.

◇끊이지 않는 재·보선 = 현재 도내 자치단체 3곳이 권한대행 체제다. 홍준표 전 도지사가 대선 출마로 중도사퇴해 도지사 권한대행이 두 번째 바뀌었다. 지난해 4월 최평호 전 고성군수는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확정돼, 같은 달 차정섭 함안군수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각각 권한대행이 군정을 대신하고 있다.

개인적인 정치 목적 또는 불법·비리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바뀌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재·보궐 선거가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6·4민선 6기 지방선거만 보더라도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잃은 단체장이 4명이다. 하학렬·최평호 고성군수·김맹곤 김해시장·이홍기 거창군수가 당선무효됐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임창호 함양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오영호 의령군수는 산지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1·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으나 군수직은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지방의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4년간 도내에서 재·보선이 치러진 곳은 2015년 기초 1곳, 2016년 광역 1곳·기초 4곳, 2017년 광역 2곳·기초 8곳 등 전체 16곳이다. 이 가운데 사직·사망으로 말미암은 선거사유를 빼고, 선거법 위반이나 공무집행방해·뇌물공여·사기·폭행 등으로 피선거권을 상실한 곳이 절반에 이른다. 사천·창원·김해·진주·양산·창녕·남해·함안 등 8곳이다. 이 밖에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지방의회 의원도 10명 안팎이다.

지방정부에서 선심성 공약이나 낭비성 예산집행 사례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하동군 갈사산단 사태는 대표적이다. 사진은 갈사산단 조성 사업지. /경남도민일보 DB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 잠잠 = 일부 지역 정치인들의 각종 비리·불법행위는 지방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킨다. 그 원인을 현재 지방선거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졸속·퍼주기 공약이나 돈 선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에는 '당선만 되고 보자'는 인식 탓이 크다. 이는 정당공천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지금처럼 일당독점 체제에서 특정 정당 공천이 곧 당선이니 후보들은 공천에만 매달린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들에게 공천 헌금에 충성서약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당 중심의 책임정치를 실현한다는 취지로 2006년 정당공천제가 도입됐지만, 오히려 현실은 지방자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관행을 끊고자 정당공천제 폐지 목소리가 선거 때마다 나왔으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당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기초지방의회 정책과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국 기초의원 10명 가운데 7명(68.8%)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 방지(56.6%)', '공천이 당선으로 이어지는 정치풍토 개선(20.9%)', '각종 비리와 공천관행의 근절(20.5%)' 순으로 조사됐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나 기초의원 4인 선거구 확대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 특히 선거구획정 제도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일당독점 구조를 깨트려야 정치 다양성과 생활정치가 실현되는 진정한 지방자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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