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강의 변화' 포착
모래톱 위 발자국 따라가자
수달 배설물 등 흔적 발견 "낙동강 부활의 신호탄"
달성보 직하류도 되살아나
모래톱 생겨나 새의 쉼터로 "6개 보 수문 모두 열려야"

동이 트기 전 모래톱이 하얀 서리에 뒤덮였다. 마치 흰 눈이 소복이 쌓인듯했다. 아름다웠다. 더 아름다운 모습은 잠시 후에 펼쳐졌다. 저 산등성이 너머로 2018년 새해 첫 일출이 시작되자 태양빛은 하얀 서리가 내린 모래톱 위로 쏟아졌다. 모래톱 위의 흰색은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장관이었다. 오른쪽에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황강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출과 모래톱 그리고 물안개가 빚어내는 놀라운 아름다움이었다.

새해 첫날 나가본 낙동강은 이렇게 황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낙동강 보의 수문이 열리자 강의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빛을 받은 모래톱 위에는 발자국이 선명하다. 발자국을 따라가자 배설물도 나온다. 이리저리 몸을 구르며 놀다간 흔적도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수중 생태계 최상의 포식자 바로 수달의 흔적들이었다.

달성보 직하류 곳곳에 허연 모래톱이 돌아왔다./오마이뉴스

수달이 돌아온 것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종인 수달이 황강과 낙동강을 오가며 사는 것이 목격된 것이다. 수달의 흔적을 따라갔다. 길은 끊겼고, 야트막한 언덕엔 온통 갈대와 마른 가시박 덩굴이다. 가시박 덩굴이 발목을 잡아끌었다. 넘어지기를 몇 번 하자 태양은 벌써 저만치 떠올랐다. 저 멀리 황강 쪽 모래톱엔 청둥오리 무리와 비오리 한 마리가 모래톱 위에 앉아 쉬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청둥오리의 선명한 녹색이 두 눈에 들어온다. 언덕 수풀을 헤치며 오른 직후라 한겨울이지만 몸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휴식이 필요했다.

큰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쉬면서 청둥오리 무리의 밝은 초록빛을 감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강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쉬이익 쉬이익" 숨소리가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강물이 일렁거렸다. 물고기인가 하는 순간 낯선 생명 하나가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는 다시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그러다 이내 다시 고개를 쳐든다. 나를 잠시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결이 다시 일렁거린다. 그때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녀석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황강의 모래톱 위에 청둥오리들이 앉아 쉬고 있다. /오마이뉴스

아마도 그 부근에 녀석의 집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집 앞에 처음 보는 낯선 생명이 앉아 있으니, "당신 뭐야?" 하는 듯 빤히 쳐다본 것이리라. 이는 내가 낙동강에서 처음으로 만난 수달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바로 3m 앞에서, 새해 첫 아침에 말이다.

새해 첫 일출을 낙동강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강으로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보면서 간절히 바랐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4대 강 복원과 낙동강 부활을 새해 첫 일출을 보면서 간절히 기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300만 식수원 낙동강에 맹독성 물질을 내뿜는 남조류(녹조)가 창궐하고,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새가 떠나가는 곳. 바로 죽어가는 낙동강의 모습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낙동강으로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보면서 간절히 기원한 직후 낙동강에 수달이 찾아온 것이다. 저 찬란한 태양과 함께 수달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자 귀한 생명이 비로소 그 존재를 나타낸 것이다. "낙동강 부활의 신호탄이 함께 떠올랐구나!" 독백처럼 튀어나온 말이다.

사실 4대 강 사업 기간과 그 후 지금까지 거의 10여 년을 낙동강을 찾았다. 낙동강이 유린당하는 현장을 기록해둬야 했고, 4대 강 사업으로 죽어가는 낙동강 모습을 담아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을 도륙하고 뭇 생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이 사업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0여 년 동안 낙동강을 줄기차게 찾은 이유다.

천연기념물 수달이 낙동강에 나타났다. 몇번을 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기자를 빤히 살핀다. /오마이뉴스

그 10년 후 새해 첫날 그간 카메라로 담아오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담았다. 바로 '생명'을 담았고, '희망'의 싹을 담았다.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자 새 생명이 찾아온 것이고, 희망이 솟구친 것이다. 아주 기뻤다. 새해 아침 만난 이 귀한 생명이 '희망'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푼 것이다.

그 희망의 싹을 더 찾아보아야 했다. 그곳을 빠져나와 차를 몰았다. 달성보로 향했다. 달성보 직하류까지가 합천창녕보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합천창녕보의 수위는 5m까지 떨어졌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는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군에 들어서서 차를 몰면서 바라본 낙동강에서 희끗희끗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작은 섬들이 펼쳐진 것이다. 바로 모래톱이다. 강의 수위가 내려가자 모래톱이 드러났다.

드론을 날려 그 모습을 하늘에서 담았다. 하늘에서 바라본 달성보 직하류는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명한 수달 발자국과 배설물. 모래톱 곳곳에 수달의 흔적이 나타났다. /오마이뉴스

수면 아래로 강바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상당한 면적에서 강바닥이 희뿌옇게 드러났다.

모래톱 위에는 새떼가 내려앉아 쉬고 있었다. 강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거대한 물그릇이자 인공의 거대한 수로에서 비로소 강의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물이 났다. 이곳에 돌아와 살아갈 못 생명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저 새떼처럼 수많은 생명이 다시 춤을 추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이 강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강이 흘러야 하고, 습지와 모래톱이 있어야 하고, 생명이 깃들어야 한다. 그 모습을 완전히 빼앗긴 낙동강이 비로소 낙동강다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수문을 열자 나타난 놀라운 변화의 현장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낙동강의 현실이다. 달성보 바로 위는 거대한 물그릇이자 회색빛 인공수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달성보 수문이 굳게 닫혔기 때문이다. 달성보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6개 보의 수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고, 그곳은 생명이 범접할 수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오마이뉴스(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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