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독수리. 위풍당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독수리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새다. 날개 길이는 2.5~3m, 몸무게는 8~10kg에 달한다. 수명은 25~30년쯤 된다고 알려져 있다. 동물원에 살던 독수리를 통해 알게 된 대략의 수명이다. 야생의 독수리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 짧을 수도 있다.

어렸을 적, 독수리는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독수리가 아기를 채간다"는 말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아이들은 무엇보다 배고픔 때문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영양 상태가 부실했던 아이들은 머리에 부스럼을 달고 살기도 했다. 크게 울며 떼를 쓰면 쓸수록 어떻게든 엄마가 간식거리를 장만해 자식들 먼저 먹여주곤 했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먹을거리가 자꾸 나올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아이들을 달랠 수 있는 가장 위협적인 말은 호랑이나 독수리가 나타나 물고 간다는 협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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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우는 아이를 채갈 만큼 크고 검은 새는 우리가 아는 그 독수리가 아니었다. 독수리와 검독수리를 비슷하거나 같은 새로 오인한 결과였다. 검독수리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사냥감을 단숨에 절명시켜 낚아채는 무서운 새다. 몽골 고원을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검독수리는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 분포한다. 주로 시야가 탁 트인 산악 지대에서 번식한다. 몽골에서는 검독수리 새끼를 집으로 가져와 길들여 사냥에 이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월악산, 내장산 같은 산악 지역이나 강원도 영월 강가 암벽 지대에 살던 텃새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겨울철에 먹이 찾아 내려온 소수 개체가 철원 평야, 서산 천수만, 임진강 등에서 가끔 보인다. 검독수리는 'Golden Eagle'로 불린다. 금빛이 도는 갈색 머리 깃털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금조로 표기된다. 멧토끼, 쥐 같이 작은 짐승에서부터 오리, 꿩 같은 새들을 잡아먹는다. 몽골에서는 검독수리를 이용해 늑대, 여우를 잡기도 하는데 매년 검독수리 사냥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검독수리는 맹금류 중 최고의 사냥꾼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늘의 제왕, 황제로 통한다.

반면에 독수리는 우리나라 새 가운데 가장 몸집이 크긴 하지만 사냥술은 제로에 가깝다. 까치나 까마귀의 텃새에 눌려 이리저리 쫓겨 다니기까지 한다. 독수리의 독자는 대머리를 의미한다. '대머리 독(禿)'자를 쓰는데 머리의 일부가 대머리라는 뜻이다. 독수리는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 독수리의 식성에 맞게 진화된 결과 머리의 털이 빠진 대머리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독수리는 대부분 유조들이다. 태어난 지 1년에서 2년 사이의 어린 새들이 멀리까지 '조기 유학'을 오는 것이다. 유조는 성조와 달리 뒷목과 정수리 털이 덜 벗겨져 있다. 검은 털도 송송 나 있는 편이다. 어른 새가 되면 탈모 현상이 심해져 점점 더 대머리가 된다. 성조는 유조의 검은빛과 달리 몸 깃의 빛깔이 암갈색이다. 검독수리가 Golden Eagle인 데 반해 독수리는 'Black Vulture'다. 사냥을 하지 않고 사체를 찾아다니는 새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혹 염소 새끼를 낚아채 가는 새가 있어 독수리를 의심한 적이 있다. 자세히 확인해 본 결과 범인은 수리부엉이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사냥은 못 해도 독수리가 나는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멋지다. 3m에 이르는 날개를 수평으로 펼치면 하늘을 압도할 만큼 위풍당당 그 자체다. 날개 끝부분은 살짝 들려있고 날개 끝이 갈라져 있는데 기류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상승 기류를 이용해 최고 5000m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한다. 독수리가 상승기류를 타고 높디높은 하늘까지 날아오를 수 있는 비밀은 35만 개의 조그만 갈고리들이 서로 얽혀 있는 날개와 속이 텅 빈 뼈 때문이라고 한다.

독수리들의 원래 고향은 드넓은 몽골 초원지대다. 몽골에서 독수리는 보통 외부 침입이 힘든 높은 암벽이나 나무 위에 직경 2m가 넘는 둥지를 튼다. 2월에서 4월 사이 산란기가 다가오면 하루 5~6차례 짝짓기를 하는데 한배에 단 1개의 알만 낳는다. 암수 교대로 알을 품은 지 약 54일이 지나면 새끼가 태어난다고 한다.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는 턱 바로 아래 먹이 주머니에 먹이를 저장했다가 새끼들에게 먹인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인 몽골의 혹독한 겨울 날씨를 이겨내야 한다. 한겨울 최저 기온이 영하 40~50도에 육박하는 겨울을 보내는 건 어린 새들에겐 어마어마한 시련이다. 결국 어린 독수리들은 혹한과 굶주림을 피해 직선거리로 1500km가 훨씬 넘는 한반도로 날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고 보면 참 불쌍한 존재들이다. 성조들은 현지 적응 능력이 뛰어난 데 비해 어린 새들은 먹이 다툼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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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 먹이 주기.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독수리는 국제자연보전연명(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는 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보고에 따르면 독수리는 전 세계에 약 2만여 개체 전후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2500여 개체가 월동하는데 전 세계 개체의 약 10%에 이른다. 그중 경상남도 지역에는 1000여 개체가 월동한다. 경남 고성, 창녕 우포늪, 김해 화포천에서 먹이 주기 활동을 한 결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제243-1호로 1973년에 지정했고, 환경부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독수리는 원래 야생에서 사체를 찾아 먹는 야생의 청소부다. 덩치에 비해 매우 온순한 동물이다. 몽골 초원에서도 버려진 사체를 먹고 살아간다. 몽골 사람들은 천장이라는 특이한 풍습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높은 바위 위에 올려놓고 독수리들이 사체를 먹도록 한다. 천장은 육체를 되돌려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이 하늘에 다가가 갈 수 있도록 독수리가 도움을 준다는 믿음이 담겨있는 풍습이다. 몽골인 들은 독수리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기르는 동물이 죽으면 초원에 던져두고 야생동물이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혹독한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도 사체를 먹이자원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위생을 우선하기 때문에 사체를 방치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먹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수리가 월동하는 시기에 먹이자원을 인위적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개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독수리에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면 야생성을 잃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들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수리는 번식지와 월동지에서 동물 사체를 먹고 산다. 다른 맹금류와 달리 사냥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독수리의 생존을 위해 먹이를 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매년 수십 개체의 독수리가 구조되고 있다. 구조된 독수리 중에는 독극물에 중독된 경우, 전깃줄 등에 부딪혀 날개가 부러진 경우, 그리고 먹이를 먹지 못해 탈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중 먹이 부족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개체들이 가장 많다. 구조된 독수리는 응급 처치를 한 후 임시 보호소에서 먹이를 주면서 돌본다. 그리고 회복되어서 야생으로의 복귀가 가능해지면 방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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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와 까마귀에 둘러싸인 독수리.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독수리들은 늦가을 처음 도착할 때는 경계를 많이 하기 때문에 먹이를 주더라도 쉽게 접근하지 않지만 겨울이 깊어갈수록 경계를 풀고 먹이 경쟁에 뛰어든다. 기온이 점점 떨어지면 독수리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더욱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이 시기가 되면 사람에 대한 경계보다 먹이에 대한 경쟁에 더욱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고성에서 겨울을 나는 독수리들은 주로 아침 10시부터 12시사이에 먹이활동을 한다. 태양이 떠오르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상승기류가 형성될 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찰대 몇몇이 무리를 형성해 먹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 군집의 일원들이 먹이 장소로 모여든다. 먹이를 먹는 밥상에도 질서가 있다. 서열이 분명하기 때문에 서열별로 먹이를 먹으며 배를 채우고 나면 다른 개체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

고성군에는 최대 600여 개체의 독수리가 월동한다. 가히 독수리의 낙원이라 불릴 만하다. 일반적으로 철새들은 번식지로 이동하기 편리한 곳에서 월동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장 손쉬운 방법은 번식지인 몽골에서 월동을 하고 둥지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먹이자원이 부족하고 추위에 약한 어린 개체들은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군집이 나누어지는데 번식지와 가깝고 추운 철원에는 성장한 어른 개체들이 월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고성을 찾아오는 독수리들은 대부분 어린 개체들이다. 그래서 고성을 찾는 독수리들에게 '야생의 걸식 아동'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2011년에는 국내 연구자들 도움을 받아 고성에서 월동하는 독수리 이동 경로를 조사한 바 있다. 78일간의 조사에서 추적기를 단 독수리는 2월 13일부터 3월 21일까지 고성에 머물고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낮에 상승기류를 이용하여 비행하는 독수리는 내륙으로 이동 경로를 택해 북상했다. 고성을 출발, 산청을 거쳐 충청북도 보은으로 이동했다. 상승기류가 형성되지 않은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에는 이동을 멈췄다. 날씨가 맑아지면 다시 비행을 시작해 여주, 양평, 철원을 거쳐 평안북도로 이동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안북도에서 다시 남하하여 철원으로 되돌아 왔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이때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와 이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기 때문에 휴식과 먹이를 섭취할 수 있는 철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독수리를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인식표를 부착한 개체들을 여럿 보게 된다. 인식표는 번식지인 몽골에서 어린 개체들에게 주로 부착하는데 이러한 연구를 통해 번식지를 떠나 다시 돌아오는 회귀율, 독수리의 수명, 월동지역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국경이 없다. 안정된 서식처를 포함하여 환경조건이 갖추어진다면 그들은 어디든 날아가서 생활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는 몽골에서 태어나 내륙을 따라 이동한다. 중간에 중국, 북한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동한다. 독수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번식지와 월동지뿐 아니라 중간에 잠시 들리는 중간 기착지도 매우 중요하다. 동아시아 축구 대회처럼 동아시아 독수리 대회 같은 대회나 워크숍을 통해 야생의 청소부, 걸식 아동 복지와 보호 대책을 수립해 나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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