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둔 지난 연말.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의 안부를 제때 챙기지 못했던 친구들이 모처럼 얼굴을 맞댔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한 친구가 가족, 친구와 함께 즐길 연극 한 편을 추천해달라고 한다.

연말에 어울리는 마땅한 공연이 뭐가 있을지 각종 리플릿과 포스터를 찍어 놨던 휴대전화 사진을 뒤졌다. 유쾌한 코미디부터 달달한 로맨스까지 공연 성수기를 맞아 도내 극단마다 웃음과 재미를 주무기로 한 장르들을 대거 포진시켜 연말 특수를 노리고 있었다.

한참 공연 정보와 일정 등을 살피던 중 한 작품에 시선이 멈췄다. 차분하고 절제된 이미지의 포스터다. 마산 극단 객석과 무대의 <너의 역사>다. 뒤이어 넘긴 사진에 담긴 포스터에도 잠시 눈길이 머문다. 누더기 같은 죄수복을 입은 배우 두 명이 무엇을 갈망하는 듯한 눈빛을 잔뜩 머금었다. 진주 극단 현장의 <섬>이란 작품이다.

각각 마산 3·15의거와 일제강점기 탄광으로 강제징용된 청년들 이야기를 다뤘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룬 연말에 다소 묵직한 '역사'를 주제로 앞세웠다. 과연 관객들 발길이 이어질지 내심 걱정마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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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 <너의 역사>와 진주 현장아트홀에서 선보인 <섬>은 공연이 이어지는 4~5일 내내 연일 성황을 이뤘다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 연극 <너의 역사> 공연을 마치고 문종근 연출이 남긴 말이다.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알리는 '때'란 없는 법이다. 공연을 하는 '시기'에 주목했던 스스로가 멋쩍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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