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이은진 경남대 교수 인터뷰
자율성 억눌려있는 경발연, 정책화하는 구조 만들어야
촛불, 한국 변화 이끈 동력

2월 퇴임을 앞둔 이은진(65·사회학) 경남대 교수는 요즘 바쁘다. 퇴임 준비도 그렇거니와 지난해 10월 말에는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됐다. 이 교수는 2010~2012년 경남도 싱크탱크인 경남발전연구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이 교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경발연, 혁신 아이디어 낼 수 없는 구조" = 이 교수는 최근 경발연 조직개편·혁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대해 경발연이 공무원과 정책 아래 놓여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경발연은 도민 전체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짤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경발연이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게 하고,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와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경발연 구성원 개개인이 맡은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도청이나 공무원 조직을 통해 정책화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경남도청은 정책이 우선이고, 경발연 구성원들이 그 밑에서 아이디어 내는 구조다. 공무원이 박사급 연구원들을 지휘하는 형태다. 이런 구조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비단 경발연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돌파력 있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는 게 지금 경남이 처한 암울한 미래다. 기업체 같은 경우도 연구·개발(R&D) 등은 모두 수도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경남이 발전하려면 경발연 같은 곳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그런 자율성이 상당히 억눌려 있는 것 같다."

2016년 가을부터 타올라 이듬해 3월 끝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촛불. 이 교수는 어떻게 평가할까.

"촛불은 새로운 세대, 주부들이 투쟁이 아닌 놀이 형태로 시작했다. 촛불의 등장으로 즐기면서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참여 형태가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 정치권도 촛불의 힘에 떠밀렸다. 우리 근·현대사를 보면 혁명이나 개혁 시기 '잠시 반짝하다'가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촛불의 흐름은 5월 대선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촛불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힘이고, 한국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촛불의 성과로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른 감이 있지만, 문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문 대통령은 주위 사람들을 잘 조직해서 활용하고, 스스로 어떻게 변하고, 바뀌어야 하는지 잘 아는 분 같다. 국회 구성 등을 봐도 문 대통령이 현재 독선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기본적인 전략도 '국회 통과'가 필요 없는 것부터 하겠다고 했고, 우선순위를 적폐 청산으로 뒀다.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해서 대한민국 전체가 바뀌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대통령이 바뀌면 그 속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얻고, 문화가 바뀐다고 본다. 대통령 리더십이 바뀌니까, CEO나 공공기관장들이 식당에서 식판을 직접 들고 먹는 등 금방 따라하지 않나."

이은진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지방분권은 돈 아닌 철학의 문제" = 이 교수는 '서울'보다는 내가 사는 '지역'을 강조하는 학자다. 평소 지론이 "지역에서 충실하게 연구를 하면 한국 미래를 볼 수 있는 시야를 발견할 수 있다"와 "서울 사람들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지역이 서울을 이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이다. 그는 지방분권은 '돈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소위 중앙에서는 늘 '지방분권 하면 지방 사람들은 더 못 살고 싸우기만 한다. 정치적으로도 부정부패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자. 따뜻한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서울 사람과 지역 사람 중 누가 더 많이 쐬고 마실까. 같은 돈 1억 원으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까, 아니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역이 훨씬 더 나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을, 지방분권을 돈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라고 생각한다. 지방분권은 지역 주민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게 핵심이다. 교부금 등은 정치적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내가 한 일을 나 스스로 책임지는 구조'가 아닌,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책임은 내가 지는 구조는 옳지 않다. 지방분권은 인권과 지역 주민 자치권이라는 '기본 틀'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소위 중앙에 있는 돈을 빼먹는 구조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지방분권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희망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희망의 상승 사다리'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못 살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해도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구멍가게를 해도 구멍가게를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이처럼 사회가 불안해지니 어느 정도 가진(5억 원에서 10억 원) 이들도 작은 거 하나라도 어떻게든 움켜쥐고 유지하려고 한다. 보수화되고 있다. 희망의 상승 사다리를 위해서는 교육 외에는 권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이마저도 무너지고 있다. 갈수록 절망하거나 투기·사행성에 빠지는 이들이 늘고 현실을 회피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가 퇴행하는 징조라고 본다. 쉽지 않겠지만, 사회가 흐르게 해야 한다. 더불어서 돈이 기준이 아닌 다양한 가치와 삶을 인정하는 사회 문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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