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별'

어설픈 자리를 꿰차며 진땀 빼는 음악을 틀어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해거름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두 자릿수에 접어드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지킴이로 자청하는 나를 수없이 채찍질하며 자리의 의미를 주지시켜 주었다.

이전 사장님에 대한 연민과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대부분은 그분과 비교해가며 자신만의 요구를 당당하게 내세웠다. 물론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주신 분과의 친밀함이 매우 돈독하였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신고식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전 사장님이 그 당시 사고를 당해 입원하면서 카페의 운영이 어려워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고 있을 즈음, 창동의 한 골목에서 많은 사람들의 정서가 담겨있는 추억의 공간이 여전하길 바라는 마음과 단순한 생각으로 뜻밖의 제안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락하였다. 일을 시작하면서 전 사장님의 근황을 묻는 질문은 매일같이 되풀이되었고, 똑같은 대답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는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어떤 때는 그리움이 너무나 커서인지, 면전에서 민망할 정도로 펑펑 울며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새로운 사람이 앉아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객들이 있는 상황에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 집은 이제 망했다"라고 큰소리를 내지르며, 놀라서 엉거주춤 일어나는 나를 쏘아보고는 황급히 나서는 이도 있었다. 어째 이런 일이!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혀 이런 일도 살면서 당할 수 있구나하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을 무렵, 주변의 지인들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특히 치과의사인 신 원장님의 도움으로 카페의 오디오 시스템을 새롭게 단장해, 양질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손님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카페 분위기와 걸맞게, 아날로그의 풍미를 더 해주는 수제 진공관 앰프와 엔틱한 스피커를 설치해주었다. 그리고 카페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오래오래 들려주기를 당부하였다. 지금도 수시로 방문해 장비를 점검해 주신다. 그럴 때마다 음악은 별빛처럼 쏟아내며 청자들의 마음을 깊숙이 헤집고 다닌다.

▲ 故김재기.

절반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전히 고인에 대한 이야기는 변함없이 거론되었다. 이제는 인내만으로 극복할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야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비교의 대상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나를 찾는 별바라기로 거듭나야겠다는 오기가 발동되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던 시절, 과감하게 낮일을 정리하고 오로지 이 일에만 몰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름 책망하는 소리를 들으며 걱정거리를 안았지만 서둘러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정성이 와 닿았는지 6년 차부터 고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간혹 오랜만에 찾아온 이들에게 나오는 이야기는 여유롭게 들어줄 수 있었다. 이 시간이 오기까지 나는 인내와 오기의 두 별을 어깨에 달고 지탱해왔다. 그런데 10년을 해오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특별한 공간을 끊임없이 유지해 주길 강요하고 있다. 희한하게도 이런 강요가 오히려 즐겁게 와 닿는다. 나에게 소임을 다하라는 신념의 별을 달아준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면에 담고 있는 자신만의 별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상관없이 그것은 가장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 되리라 본다. 주절 없는 긴 사설을 뒤로하고 이제 밴드 <부활>과 연관된 애틋한 별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2004년 어느 날, 부활의 9집 앨범 작업으로 한창 정신없던 김태원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제작하고 있던 이재한 감독이 그의 곡 '별'을 OST로 담고 싶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계속된 설득에도 불구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할 뿐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재한 감독을 돌려보낸 그는 깊은 상념에 잠기며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밴드 부활이 1, 2집 앨범을 발표한 이후 보컬 이승철의 탈퇴와 1988년, 멤버들이 대마초사건에 연루되면서 밴드는 와해해 버렸다. 무려 5년 동안 최악의 방황을 하고 있던 김태원에게 재기의 불꽃을 피울 한 보컬이 불현듯 나타난다. 김태원은 이때를 두고 "불광동에 죽이는 보컬이 있다고 해서 소개받은 사람이 바로 김재기입니다"라고 회상하며,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눈빛과 음색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원래 록 밴드 'New Little Sky'의 보컬이었던 김재기는 그룹이 상업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자 입대를 하였고 제대 후 부활의 보컬로 영입된 것이다. 김태원과 보컬 김재기는 2인조의 밴드로 3집을 준비하며 그룹 부활을 재가동하였다. 그러나 회복 불능의 폐인으로 취급받던 김태원에게 선뜻 제작비를 투자할 음반사는 없었다. 결국 그는 신곡을 녹음한 데모테이프를 들고 기획사를 돌아다니는 굴욕을 감내해야만 하였다. 두문불출하고 신곡창작에 들어간 그는 아련한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옛 연인과의 슬픈 추억을 회상하며 '사랑할수록'이란 곡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활의 명곡 '사랑할수록'은 김재기가 연습차 단 한 번만 불렀다. 정규앨범에 실을 목적으로 불렀던 것이 아니라 레코드사에 제출하기 위한 데모테이프에 녹음하였던 것이다. 나중에 데모 버전으로 실린 음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활3집 <기억상실>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부활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앨범이 되었다.

음반 작업에 몰두하던 어느 날, 녹음실에서 김태원이 연주하는 '별'을 듣고 있던 김재기가 "곡이 너무 좋다"며, 꼭 자신이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원래 '별'은 김태원 자신의 빛났던 과거를 회상하며 만든 곡이었으며, 또한 고인이 된 가수 김현식을 추모하는 곡으로 가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김재기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이튿날, 여느 때처럼 음반 작업을 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와 있어야 할 김재기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김태원은 망연자실하였다. 바로 김재기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였다는 소식이었다. 사고가 있기 전날 '사랑할수록'의 데모 버전을 녹음하고, 견인된 본인 소유의 프레스토 승용차를 찾아 경기도 파주에 공연하러 가던 중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침범한 상대 차량과 정면으로 추돌하는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였던 것이다. 그의 나이 26살, 1993년 8월 11일에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였다. 김재기는 생전에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주변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는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동생 김재희에게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한데,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내 자리를 대신해 달라"고 마치 유언처럼 당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죽기 이틀 전날 김태원에게 동생을 소개해 주기까지 했다. 형의 음색과 비슷했던 김재희는 그를 대신해 앨범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침내 1993년 10월, 부활 정규 3집을 도레미레코드에서 LP와 CD,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해 동시 발매하였다. 특이한 점은 LP와 CD 앨범 재킷의 이미지를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재기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별'은 김태원의 가슴 깊숙한 곳에 아픔과 그리움으로 남아, 여전히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재한 감독이 한 가수를 데리고 다시 그를 찾아왔다. 당시 '발작'이라는 곡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그룹 <원티드>의 멤버인 서재호와 첫 대면을 하게 된 것이다. 김재기의 빈자리를 채울 만큼 빼어난 실력을 갖춘 서재호가 맘에 들었다. 하지만 김태원은 아무에게나 그의 빈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는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고민에 빠져있던 김태원은 꿈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듣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김재기의 메시지를 듣게 되고,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OST로 '별'을 싣기로 결정 내린다. 하지만 김태원은 또 한 번 믿기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바로 '별'의 녹음을 앞두고 서재호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11년 전 김재기와 마찬가지로 서재호까지 세상을 등지자, 그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서재호가 사고를 당한 날도 8월 11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전혀 믿기지 않는 현실의 너무나 큰 아픔을 다시 한번 더 느껴야만 했다. 결국 '별'은 원티드 멤버였던 하동균의 허밍이 담겨 영화 엔딩에 삽입되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방송에 출연한 김태원은 "김재기 군이 녹음 도중 사고를 당하셨는데, 그 후 서재호 씨가 고인이 됐다. 별은 별인데 쓸쓸한 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 당시에 별은 나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고, 그 이후에는 고 김재기를 그리는 별이 되었고, 그다음에는 고 서재호를 그리는 별이 되었다"며 그 비통함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별'은 고 김재기와 요절한 모든 뮤지션을 추모하는 의미의 곡이 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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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3집 <기억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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