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즈훙 외 지음
저자들, 타이베이 '이면' 기록
52개 지점·역사적 사건 뽑아내
철거민·동성애자 등 현실 비춰
한 도시를 깊게 이해할 수 있어

최근 대중매체가 다루는 여행의 모습은 '음식'으로 굳혀진 듯하다. 음식으로 세상을 읽겠다는 깊이 있는 접근보다는 먹는 모습 자체에 치중한다.

팍팍한 일상을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여행으로 이어지고, 여행지에서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즐기겠다는 대중의 모습이 비친 까닭이겠다.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신념이 이렇게나 강했던 때가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책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흐름에 역행하는 책이 분명하다.

타이베이 시 태평정 삼정목 1에는 천마다방이 있었다. 변호사이자 흑백 무성영화 해설자였던 잔톈마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공간이다. 공간은 많은 지식인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현재 천마다방 자리에는 난징 쌍둥이별 빌딩이 들어섰다. 중산구 난징서로로 주소가 바뀐 빌딩 벽에는 '천마다방'이라는 표기만이 남았다.

현지인의 기억에서도 잊혀가는 천마다방은 사실 근현대사의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다방 대문 옆에 담배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던 린장마이는 1남 1녀를 둔 과부였다. 당시 린장마이처럼 큰 거리, 작은 골목에서 담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1947년 2월 27일에도 린장마이는 행인을 상대로 담배를 팔고 있었다. 오후 7시, 갑작스레 공매국(현 타이완담배주류공사) 조사원이 나타났다.

불법 담배 판매 수사에 대부분 상인은 좌판을 거뒀으나 나이가 많았던 린장마이는 수사원에게 둘러싸였다. 결국, 린장마이는 새벽부터 힘겹게 번 6000원을 뺏긴다.

봐달라는 린장마이와 수사원 사이에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먼저 자리를 떴던 이들이 돌아와 린장마이를 도왔다.

사람이 점점 늘어난 상황에서 갑자기 수사원 푸쉐통이 개머리판으로 린장마이를 때려눕혔다. 뜨악한 상황을 목격한 민중은 분노했고, 수사원과 군인을 향해 돌을 던졌다.

수사원에게 치료비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던 민중의 목소리 사이로 총성이 끼어들었다. 주민 천원시가 즉사했다. 하룻밤이 지나 이 사건은 2·28사건으로 이어진다.

2·28사건은 타이완 본성인이 전후 타이완을 접수한 국민당 정부를 상대로 항쟁을 벌인 사건이다. 국민당 정부는 계엄령을 내리고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계엄령은 38년 동안 이어졌고, 이 기간 2·28사건은 언급조차 어려웠다. 1989년이 되어서야 사건을 다룬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가 제작됐으니.

기시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한국의 5·18민주화운동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가. 책은 이렇게 자꾸만 타이베이의 그늘을 들춘다.

"우리는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과 같은 주류적인 힘과 그 기반에 맞서 '사람들이 주변적인, 틈새의, 취약한, 낮은 계층의, 대안의, 반역의 모습들을 볼 수 있게 할 수 없을까?', '도시에서의 이질적 경험으로 도시생활 속의 정의와 불의, 욕망과 상처, 불안과 억압의 갈등을 깨닫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이런 결의 대안적 도시 형태를 그려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서문 가운데)

도시의 이면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은 52곳의 지점, 사건을 추렸다. '철거민과 강제이주 반대'를 주제로 화광·샤오싱 공동체 구역과 바오창옌, 14·15호 공원을 소개하고, 2·28공원의 남성동성애자 경험, 타이베이 역 외국인 노동자 모습까지 비춘다. 책은 불편한 사실을 들춰내 이것이 역사이자 현실임을 깨닫게 한다.

도시를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음식'을 선택하는 행위 또한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 도시를 깊게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도시의 이면'을 따라 걷는 행위는 결코 잊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겠다.

306쪽, 산지니,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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