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해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32명으로 줄어든 가운데 경남에는 창원 3명, 통영 1명 등 4명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의식마저 희미해진 고령이어서 여생 또한 그리 길 수는 없다. 살아있는 동안 소원이 있다면 단 하나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듣는 일이다. 통영의 김복득 할머니는 100세 최고령이지만 한·일 위안부 이면 합의 내용이 공개된 날 다시 한번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비통함 속에 위로금으로 받은 1억 원을 되돌려주겠다며 눈물을 떨궈 주변의 눈시울을 적시게 해주고 있다. 이번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김 할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또 누군가의 방문을 받을 때마다 위로금 반납 의사를 거듭 밝힘으로써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꾸짖는 당찬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성 노예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든지 소녀상이나 해외 기림비 건립에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억제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일정부 간 이면합의가 졸속이며 굴욕적이라는 것은 일반국민의 시선으로도 능히 공감이 간다. 공개되면 당장 국민적 반발을 살 게 뻔한데 박근혜 전 정부는 왜 그런 위험부담을 뿌리치고 앞질러 협상을 성사시켰을까. 비록 조약은 아니라고 하나 위안부 문제는 국가적 자존과 피해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가 걸린 가장 예민한 쟁점이 아니던가. 표면적으로는 정당성을 포장하면서 이면으로는 절망과 분노를 들끓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음이 확인된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단체와 각계각층에서 분출되고 있는 반발여론은 그 기세가 갈수록 더했으면 했지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이 합의서에 명시된 '불가역적'이란 단서를 구실로 맹렬하게 역공을 취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없이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의심받는 협상이 재협상의 기회마저 봉쇄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바로잡아야 하고 국민도 모르는 감추어진 사실이 드러났다면 그 이면 합의는 이제 신뢰성을 잃었으므로 승복할 수 있는 명분도 상실했다. 일본의 진심을 다한 사과와 양국 간의 공정한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피해 할머니들의 평생의 가슴앓이가 그나마 위안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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