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와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개그맨이란 직업은 자신을 던져 대중에게 웃음을 준다. KBS '개그콘서트', tvN '코미디빅리그', 각종 예능까지. 개그맨들은 다양한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인기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돈과 명예도 따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유명 개그맨'일 경우다. 무명 개그맨의 삶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하다. 5분 남짓한 무대를 위해 일주일을 준비하지만 웃기지 못하면 그대로 편집된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개그맨은 자연스럽게 잊혀 진다. 김한율(35) 씨도 무명 개그맨 중 한 명이었다. 창원에서 나고 자란 김 씨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갔다. 우연히 도전한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지만 길게 활동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여러 사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위해 노력했고 현재는 지역 MC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운명처럼 찾아온 개그맨 시험

인터뷰 당일 김한율(본명 김종훈) 씨는 창원문성대학교에서 '예비 신입생 입시설명회' 행사가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구경했다. 김 씨는 화려한 언변과 재치로 좌중을 압도했다. 행사를 끝낸 김 씨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께 맞기도 하고 친구들한테 장난도 많이 쳤습니다. 한 마디로 개구쟁이였죠. 친구들이 계속 개그맨을 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제 꿈은 영화배우였죠. 당시 마산역 인근에 있던 연기학원에 다녔습니다. 야간자율학습도 빼고 영화 감상·연기 연습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연극영화과를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김 씨는 '딱 한 곳만 시험을 쳐서 붙으면 보내 달라'는 제안을 했다. 모 대학 연극영화과 시험을 쳤지만 불합격했다. 할 수 없이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1학기 만에 자퇴하고 군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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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율 전문 MC. / 박성훈 기자

"당시 요리사가 한창 뜨는 직종이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도피하는 심정으로 군대에 자원입대했죠. 전역 후 영화 오디션을 보기 위해 서울로 갔습니다. 한 100번 넘게 봤나? 다 떨어지는 거예요. 좌절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주변에서는 개그맨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도 '딱 한 번만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MBC 공채 개그맨 시험에 지원했습니다. 당시가 2007년도였는데 최종 시험에서 탈락했어요. 영화 오디션은 계속해서 떨어지는데 개그맨 시험은 한 번 만에 붙으니까 얼떨떨하면서도 자신감이 생겼죠. 몇 개월 뒤 KBS에서도 공고가 났습니다. 거기서도 3차까지 갔어요. 딱 1년만 더 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알바를 하면서 1년을 버텼다. 2008년 다시 KBS·MBC 공채 개그맨 시험에 지원했다. 결과는 두 곳 모두 최종 탈락이었다. 포기하고 다른 일을 준비하던 김 씨는 우연히 SBS 9기 개그맨 이현후 씨와 만남을 가졌다. 김 씨의 재능을 알아본 이 씨는 SBS 개그맨 시험을 추천했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시험에 응시했다.

"당시 심사위원이 개그맨 컬투(정찬우·김태균)였습니다. 몇 번 탈락하니까 떨리지도 않더라고요. 준비한 연기를 열심히 끝냈습니다. 그러자 개그맨을 왜 하려고 하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돈 많이 버는 스타가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죠. 잠시 후 빵 터지는 거예요. '똘아이'가 왔다면서 좋아하셨죠. 그 결과 SBS 공채 10기 개그맨으로 합격하게 됐습니다."

녹록지 않았던 개그맨 생활, MC로 제2의 인생을

성공한 개그맨의 삶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선배 개그맨과 웃찾사(SBS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경상도 부부' 연기를 준비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김 씨는 교체됐다. 좌절하지 않고 동기와 새로운 코너를 준비했다. 이번에도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몇 달 뒤 천안함 사고가 발생했다.

"동기와 준비한 게 '열혈장사꾼'이란 코너였어요. 국장님, PD, 관객 등 주변 반응도 너무 좋았죠. 그런데 몇 달 뒤 천안함 사고가 터지면서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중단됐습니다. 2개월 뒤 다시 방송을 하려고 하는데 SBS에서 2010년 월드컵 독점 중계를 하는 거예요. 월드컵 기간 내내 쉬었죠. 개그라는 게 타이밍을 놓치면 끝이거든요. 거기다 웃찾사까지 폐지가 됐습니다. 그때가 30살이었는데 눈앞에 깜깜했죠."

개그맨 생활을 접고 창원으로 내려왔다. 카페, 요식업 등 사업을 준비했다.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켜야 하는 생활에 답답함을 느꼈다. 끼를 분출하고 싶었던 김 씨는 아프리카TV에서 '나는 NC다'라는 개인방송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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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율 MC의 행사 진행 모습. / 김한율 씨 제공

"헌정 방송 겸 응원 방송이었죠. NC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2년 반 정도 했을까요? NC 팬들 사이에선 거의 스타였습니다(웃음). 때마침 장내 아나운서 공개 모집을 한다는 거예요. 지역에서 끼를 펼칠 기회라고 생각했죠. 거의 확정 분위기까지 갔지만 최종 투표에서 떨어졌어요. 개인방송을 하면서 했던 언행이 문제가 됐습니다. 문제가 될 발언은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부풀려 지니까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이 최종합격을 했습니다. 사업도 재미가 없어졌죠. 하루하루 무의미한 생활을 하던 중 MC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을 굳힌 김 씨는 서울로 향했다. 전문 MC들을 따라다니며 노하우와 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작년 8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현재 지역 MC로 경남지역 행사장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중 어떤 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어봤다.

"제가 창원남고 출신입니다. 올해 창원남고 총동문회 체육대회 행사를 진행했어요. 모교 행사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꽤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선배님들이 잘 봐줘서 할 수 있었습니다. 모교에 가니까 뭉클하다고 해야 하나? 사회자로 그런 행사에 참여한다는 게 특별하잖아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반대로 힘들었던 적은 없었을까?

"최근에 창동에서 큰 행사가 있었어요. 추운 날씨에 4시간 동안 떨었죠. 몸살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야외 행사는 날씨와 싸워야 하니까 그게 힘들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다 견뎌야지 좋은 MC가 될 수 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행사 1시간 전에는 도착해서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가볍게 유쾌하게 그러나 매 순간 진지하게

김 씨는 지난 10월 31일 제5회 이그나이트 마산(평범한 사람들이 5분 동안 프레젠테이션으로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 고민 등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나는 실패한 개그맨'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자극적인 제목인 건 맞습니다. 사실 개그맨으로는 실패했다고 봐야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 MC·방송·라디오 등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의미로 발표를 했습니다."

현재 김 씨는 기부 릴레이 방송 한시TV(1만 원을 릴레이 형식으로 기부하는 지역방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방송을 통해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느낀 점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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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율 전문 MC. / 박성훈 기자

"아무리 1만 원이라도 타인에게 돈을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거기다 다음 방송에 출연할 참가자도 추천해야 해요. 근데 한 번도 막힌 적이 없었어요. 5만 원, 10만 원을 기부하려고 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또 음식점에 가면 사장님들이 고생한다고 꼭 밥을 차려주세요. 이런 걸 겪으며 '아직은 우리나라가 살만 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한시TV를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죠."

김 씨의 개인 페이스북 소개란에는 '가볍게 유쾌하게 그러나 매순간 진지하게'라는 문구가 있다.

"인생의 슬로건입니다. 무거운 행사는 안 좋아해요. 행사는 페스티벌이거든요. 앉아서 박수치고 공연 보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볍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행사를 진행하는 책임자 중 한 명이니까 진지하게 임하는 거죠."

올해 5월 웃찾사가 폐지됐다. 이 얘기를 꺼내자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김 씨의 표정도 굳어졌다. SBS 공채 개그맨으로서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그 무엇보다 설 자리가 없어진 후배들을 걱정했다.

"안타깝다 못해 침통하죠. 올해도 뽑힌 후배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방송국이 시간 편성을 너무 이상하게 합니다. 주말 황금시간대로 편성을 해야 방송국도 프로그램도 살 수 있는데 '빈 시간 끼워 맞추기' 형식으로 돌리는 거죠. 시청률이 잘 나올 수가 없죠. 회사는 퇴직금이라도 받죠. 나름 인지도가 있던 개그맨들은 장사라도 하지만 무명인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밖에 없어요. 꿈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설 공간을 잃어버렸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꿈을 펼칠 공간도 없잖아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재밌고 유쾌했던 MC'로 기억되길

개그맨·MC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일단 부딪혀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도전입니다. MC에 대한 공부를 하던지 개그를 따라 하던지 움직이세요. 그러다 보면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행사를 이끌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일 겁니다.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 말이 전부입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 곳곳을 누빈 덕분일까. 주말 대부분은 행사 MC로 일정이 꽉 차 있다. 자신을 알아보는 시민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힘들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김 씨. 대중에게 어떤 MC로 기억되고 싶을까?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재밌고 유쾌했던 MC 김한율'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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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율 MC의 행사 진행 모습. / 김한율 씨 제공

김 씨는 방송 쪽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방송인으로 자리 잡는 게 목표입니다. 지역 방송, 라디오 등 다양한 곳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해야죠. 열심히 뛰다 보면 경남도민 전체가 저를 알아보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인터뷰는 한 편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듯 유쾌했다. 김 씨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행사를 위해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지 물어봤다.

"재미와 웃음, 감동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 어떤 행사라도 최고의 행사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제 또 다른 슬로건이 '행사를 행사답게'거든요. 앞으로 더 성장할 MC 김한율, 나아가 방송인 김한율을 꼭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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