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만 29명을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예고된 참사이자 어처구니없는 인재임이 드러나고 있다. 대형 사고나 참사가 그렇듯이 재앙은 모든 고리가 사슬처럼 얽혀 있다. 그 연결고리 중 하나라도 끊어냈다면 참사는 거짓말 같은 일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 역시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재난 대응에 미흡한 건축물 구조, 불법 증축 의혹, 건물주의 소방 관리 미흡, 불법 주차, 부족한 소방인력, 소방당국의 초동대처 미흡 의혹 등 대형 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대부분 요건이 이번 참사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업주나 건물 소방 관리 책임자의 책임의식, 소방차 진입을 방해하지 않는 시민의식 등도 아쉽지만, 재난 관리의 공공적 측면이 훨씬 더 부각되어야 한다.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소방시설 관계자가 시설을 정기적으로 자체 점검하거나 관리업자나 기술자격자에게 정기적으로 점검하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안전 점검을 민간에 일임한 것으로, 이런 규정이 어떤 사고를 일으켰는지는 이번 참사에서 입증되었다. 민간업자가 해당 건물에서 참사가 일어나기 얼마 전 한 소방점검에서, 2층 여자 사우나 비상 탈출구가 막힌 것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강 훑어봐도 발견할 수 있는 일도 그냥 넘어갔으니 업자가 여자 사우나 시설에 들어갔는지조차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참사 직후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이 중앙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장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듯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는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두루 중요하다. 그러나 법령 제정이나 예산 편성권에서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의 막강한 힘에 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앙 정부가 중심이 되어 안전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국민안전이 문재인 정부의 대표 공약이라는 점은 상기하기도 새삼스럽다. 문 대통령의 취임 첫해가 가기도 전에 지진, 해양 사고, 화재 등 큰 규모의 자연재해와 인위적인 재앙이 일어났다. 정부는 재난 안전 관리의 국가적 책임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종합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국민은 모두 잠재적인 제천 현장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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