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괴물에 홀려 앞만 보고 산 국민
잊었던 이웃 다시 생각하고 돌아봤으면

저녁 뉴스를 알려 드립니다. 서너 달째, 지구촌 곳곳이 자연재해로 아수라장입니다. 어떤 나라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집이 수만 채 떠내려가고, 어떤 나라는 몇 년째 가뭄이 들어 물 한 방울 구하지 못하고, 어떤 나라는 바닷물이 도시를 덮쳐 수십만 명이 죽고, 어떤 나라는 큰 지진이 일어나 수십 층짜리 빌딩과 아파트가 무너져 수백만 명이 깔려 죽고, 어떤 나라는 곳곳에 핵발전소가 터져 수천만 명이 죽고 국가 전체가 죽음의 늪에 빠졌습니다. 지금은 모든 나라가 모두 '비상사태'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런 엄청난 불행을 겪는 국민을 위로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오늘 특별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여태 '경제성장'이라는 괴물에게 홀려 앞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살아야 할 때입니다. 성서에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 더구나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아랫집 윗집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이웃을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괜스레 이웃을 알게 되면 오히려 귀찮은 일이 생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때론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를 몰라 겁이 나서 대문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그고도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 있는 곳이 멀면 가까운 곳에 불이 나도 끄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멀리 있는 부모·형제보다 이웃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남남이라 하더라도 이웃하여 다정하게 지내면 사촌처럼 친하다는 뜻으로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웃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벗이며 형제입니다. 좋은 이웃이 있으면 천하를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이웃조차 모르는 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경쟁과 속임수가 판치는 도시에서, 어찌 사람이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날이 갈수록 인간의 탐욕과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몇 해 전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인간의 탐욕과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 모두는 가난하고 불편했지만, 정이 흘러넘치던 옛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야 할 때는 돌아가는 것이 진보이며, 우리 모두가 살길입니다. 두려워 말고 함께 손을 잡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흙을 밟으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연 속에서 이웃과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왼쪽 길이나 오른쪽 길이 아닙니다. 편한 길이나 험한 길도 아닙니다. 다만, 땅에 발을 딛고 우리 함께 걷는 길입니다. 우리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어진 방송 시간 때문에 특별 담화를 다 읽어 드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모두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도, 온갖 편리함을 누리며 입으로만 생명과 환경이 어쩌고저쩌고 떠벌리던 기업가, 지식인, 종교인들은 특별 담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제 살기에 바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열한 짓거리를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 가면 하느님을 찾고, 절에 가면 부처님을 찾고, 그러나 밖에 나오기만 하면 돈을 찾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기도를 드리는 이런 '거짓 세상'을 어찌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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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조상이 달라도, 지역과 나라가 달라도, 말과 글이 달라도, 생김새와 얼굴빛이 달라도, 문화와 종교가 달라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흙에서 왔다가 흙에서 난 걸 먹고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거짓과 탐욕뿐입니다. 저녁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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