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 기록되는 순간 시간 초월해
기억을 유지하는 것 언론의 중요 책무

필자의 연구실과 학과사무실은 복도의 시작과 끝 부분에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연구실에서 메일을 확인한 뒤, 물과 우편물을 가지러 학과사무실에 들른다. 언제부턴가 학과사무실에 들러서 예정에 없던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물과 우편물 중 하나를 빠뜨려 학과사무실에 다시 가곤 한다. 주로 물을 빠뜨린다.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일인데, 왜 이럴까? 많은 신경과학자는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망각은 기억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기억을 꺼내오려면 원래 기억을 형성한 조직과 다양한 뇌 영역이 모두 필요하다. 기억을 형성하고 인출하는 뇌 영역이 포화상태로 될 수 있기 때문에 잊는 것이다.

내가 방에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나는 그 사람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매일 같은 시간에 내 방에 들어오면 나는 더는 쳐다보지 않게 된다.

일단 자극에 익숙해지면 그에 대한 반응이 억제된다. 이를 습관화라고 한다. 습관화가 없다면 우리 뇌는 모든 자극에 항상 반응할 것이다. 어린 아기는 주변의 모든 남성을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진짜 아버지에게만 아빠라고 한다.

이것은 의미 있는 자극과 비슷하지만, 실제로 의미 있는 자극이 아닌 것에 대한 반응을 억제한 것이다. 이를 차별화라고 한다. 차별화가 없다면 여러 자극 중 우리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망각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치명적인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은 주로 기록한다. 기록은 한 사람의 하루에 대한 일기일 수도 있고, 특정 사건에 대한 기사나 보고서일 수도 있고, 한 시대의 사초일 수도 있다. 이 기록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록물이 쓰이는 순간, 일어난 모든 일들은 시간을 초월한다. 기록을 보는 사람은 그때로 돌아가 마치 지금 경험하는 것처럼 그날의 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내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서 그들에게도 기억시키면 된다. 이를 집단기억이라고 한다.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을 TV 화면으로 생생하게 보았다.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그 기억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개개인의 기억이 됐다. 먼 훗날 태어나 그때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게 된 사람도 지금의 우리와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언론매체는 특정개인의 중요한 체험을 많은 이들의 중요한 체험으로 변화시킨다. 개인의 체험이 다른 사람과 공유되면 집단기억이 된다. 기록과 집단기억은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기억, 즉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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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책상에 놓인 탁상용 달력에는 연말에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달력에는 12월 20일이 빨간 글자로 19대 대통령선거일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 빨간 글자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했던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선고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나의 기억은 촛불집회와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진다. 많은 기억은 금방 사라진다. 또 어떤 기억들은 몇 세대에 걸쳐 유지된다. 어떤 기억들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이어지기도 한다.

2017년의 기억은 나의 기억이며 동시에 우리의 기억이고, 미래에 전해질 기억이다. 이 기억을 유지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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